부활 6주간 금요일. 사도 18,9-18;요한 16,20-23
루카 복음사가는 자기가 쓴 복음을 고위관리에게 바치면서, 세상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섞어가며 저술합니다. 그 이유는 실제로 그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죠. 마찬가지로 그가 쓴 또 하나의 역작, 사도행전에도 그런 시도가 보입니다. 오늘 독서 중에 ‘갈리오’ 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97년도 경향잡지 2월호에 보면 최근 갈리오의 묘비가 발견되었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스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델포이 신전이란 곳이 있는데요. 여기서 갈리오의 묘비가 나왔답니다. 당시 총독은 1년을 주기로 재임기간을 가졌는데, 여기 기록으로 따지면 51년 5월부터 52년 5월 사이에 총독으로 있었다는 것이 실제로 확인되면서 사도행전의 권위가 더 높아졌는데요.
오늘의 인물인 갈리오라는 사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갈리오는 바오로로 인해 재판정이 소란스러워졌을 때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유다인 여러분. 말이라든지 명칭이라든지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 어디서 많이 들어보시지 않았습니까? 상당히 빌라도를 연상시킵니다. 만사가 귀찮고 내가 다스리는 곳은, 소란스럽지 않고 무조건 안정이 된 곳이어야 하니까 말입니다. 비약을 하자면, 우리의 마음과 비슷합니다. 내 마음은 항상 평안했으면 하는 마음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아십니까? 바다에 태풍이 불고 폭풍우가 가끔 몰아쳐줘야, 바다 밑에 깔려 있던 것들이 뒤섞이면서 바다의 질서가 잡힌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각종 플랑크톤을 비롯하여 해산물들의 자리 섞임으로 인해, 바다가 제자리를 다시금 잡아간다는데요.
복음에 나오는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있다.” 는 말씀도 곧 다가올 위기로 인해 불안해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위기, 불안, 근심만 보려는 자세는 어쩌면 참된 것을 보지 않으려는 자세와 같다고 할 것입니다. 그저 지금만 잘 되기를 바라는 자세란, 지금 이 곳에서 모든 복을 다 받겠다는 현세구복적인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 약속해주신 그 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