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성모신심 미사

2013. 5. 3. 오후 1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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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성모 신심 미사. 사도 1,12-2,1-4; 요한 19,25-27

  예전 성인들이나 교회가 해왔던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구멍처럼 여겨집니다. 뭔가 좀 허술해 보인다는 것이지요. 그다지 계획적이지 않고, 치밀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이것을 사회적인 용어로 바꿔보면, ‘구멍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고요. 우리가 지칭하는 용어로 바꾸자면, 주님이 오실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동안 우리가 시도해 왔던 일들이 그래 왔습니다. 물론 사람은 치밀한 면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하나 계획적으로 꼼꼼하게 해나가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러다 보니 문제도 생깁니다. 내 계획에서 벗어나는 일이 발생하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생기거나, 또는 앉아서 따져보니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여길 때, 그 때부터 좌절하거나, 나 자신을 미워하거나, 또는 남을 원망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를 합니다.

  성경 속의 인물들도 나름 머리를 굴리며 살았습니다. 아담은 선악과 열매를 먹은 후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야 자기가 사는 줄 알았습니다. 카인은 동생을 죽여야 자기가 사는 줄 알았고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들을 낳는다는 약속을 받았음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자기 하녀를 시켜 아이를 낳게 합니다. 요나는 부름을 받지만 두려워서 도망갔습니다. 바오로는 눈이 안 보이게 되자 절망에 무릎을 꿇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이었을까요? 자기 생각으로만 가득 찼었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그 다음에 어떻게 될런지 모르지만, 당신이 주실 자리를 마련해 놓고 기다리기보다, 지금 모습은 그저 자기 생각으로만 가득했는데요.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기에, 복음에서 주님이 부활하셨기에 지금에 교회가 있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마음으로만 가득했다면 독서와 복음속의 이 상황은 암담하기 그지없는 모습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습니까? 여기서 우리와 성모님, 그리고 사도들과의 차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대다수 신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만큼 하면서 주님께 맡겨야지요.’ 하지만 정작 그 상황이 닥치면 앞서 얘기한 인물들처럼 나름의 머리를 굴리거나 도망가거나 좌절하기 바쁜데요. 내가 믿는 사람들이라면 무엇을, 어떻게 믿고 있는 지부터 봐야 하겠습니다. 한편으로 실수가 우리에게 큰 가르침이 되기도 합니다. 다시는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게 말이지요. 하지만 여전히 실수를 계속 되풀이 하고 있다면, 내 믿음의 정도도 헤아려 봐야 하겠습니다. 당신이 오실 자리를 마련해 놓고 사는 지, 아니면 여전히 내 판단에 더 의존하는 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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