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8주 화요일

2013. 5. 27. 오후 11:24:16

글자

연중 8주간 화요일. 집회 35,1-15;마르 10,28-31

  오늘 말씀은 너무 잘 아는 내용이지만 받아들이기는 불편한 내용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베드로도 나서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라는 내용을 보며 그럼 이것, 저것, 여러가지가 걸쳐져 있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데요.

  많은 분들이 무언가를 봉헌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라고요. 그렇지요? 하느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쉽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복자 슈브리에 신부가 쓴 책을 보니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어떤 집안을 막론하고 지켜야 할 생활원칙은 가난과 사랑이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하지 않는 조심성과, 하느님의 섭리를 시험하지 않아야 한다. 즉 하느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덧붙여라. 그렇게 하거나 말하는 것은,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다리며, 해야 할 것만을 하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느님의 뜻하심은 당신의 뜻하심은 따로 있는데, 내가 무언가를 내놓으며 봉헌했다고 해서, 내가 예상한 그 정도의 무언가를 나중에라도 받을 수 있으려니.. 여기며 봉헌하는 행위의 시작부터가 문제가 되는 것이며, 결국 하느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동이란 뜻입니다. 실로 엄청난 말씀이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뜻하심을 주님 스스로 하실 수 있도록, 나는 그저 평소의 삶을 살면서 할 것만을 하는 자세, 이것이 봉헌의 자세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게 바칠 것을 바치며 평범하게 살아갈 때, 꼴찌가 첫째 되는 영광 은 나도 모르게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바라던 보상이 오지 않았다고 해서, 따지지도 않는 자세도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게 하느님께 내놓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가난의 자세를 살도록 고삐를 다시 잡아 맬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한 어느 정도 선에서 하고 있는 봉헌의 자세 가 아니라, 실로 탄복할 수 있는 경지의 자세로까지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앞선 책에 나온 기도문을 끝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가난, 너는 얼마나 아름다우냐! 예수 그리스도, 내 스승께서 너를 하도 아름답게 보셔서 하늘에서 내려오시면서 너와 결합하여 너를 일생의 반려자로 삼기까지 하셨으며, 너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원하셨다. 스승이여, 제게 그 아름다운 가난을 주소서. 저로 하여금 그것을 정성껏 찾고 기쁘게 붙잡고 사랑으로 껴안아 제 일생의 반려로 삼고 제 스승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가난한 사람이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같이 그것과 더불어 나무 조각 위에서 죽게 하소서 아멘. ’


댓글 1

  • 2013년 6월 1일 오후 6:00

    저에 모든것 주님 뜻대로 하소서 ~ 그리고 순종할 수 있는 은총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