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2013. 6. 1. 오후 5: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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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

 모두가 바라는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건 내 마음이 비옥하기를 원합니다. 뭔가 여유가 있어서 남의 것도 잘 받아 들여줄 수 있고, 그러면서 서로가 웃을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지요.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나 혼자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 도와주어야 이런 것이 실현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즉 나 혼자 계획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게 정확한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에 제자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요.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습니다.” 이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황량하다보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에 연연하게 마련입니다. 연연하다보니 내 마음은 점점 황량해지고, 황량해지다보니 현실의 것을 연연하게 되고,,, 이런 무한 반복은 계속 이어집니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궁금한 점부터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는 방식입니다. 당신은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는 분이시지만, 구태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습니다.” 처럼 우리가 눈 앞에 연연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기적을 일으키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기적은 더 이상 허망한 이야기, 꾸민 이야기,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긴데요. 그럼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가지고 있는 가를 먼저 보아야 기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왜 예수님은 사람들을 이끌고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광야로 끌고 가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강북 수유시장이나 우이시장처럼 먹을 것도 많고, 볼 것도 많은 곳에 데려가야 우리가 기분도 좋고 마음이 안심이 될 텐데, 오히려 왜 아무 것도 없는 그런 곳으로 데려가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 하나가 있습니다. 1996년에 개봉된 마이크로코스모스라는 72분짜리 영화입니다. 거기에는 수 많은 곤충이 나옵니다. 개미, 지렁이, , 거미 등 말이지요. 이 작은 곤충들이 어떻게 사는 가가 나옵니다. 그 중 한 장면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개미 십 여 마리가 지름 3센티 정도 되는 물 웅덩이에 모여서, 자기의 입을 통해 물방울을 하나를 머금고 멀리 떨어진 동지의 입에 그 물방울을 넣어주고 있었습니다. 자기 입 크기 정도의 작은 한 방울을요. 그것도 떨어질세라 서로가 조심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하찮게 보일 수 있는 그 작은 방울이, 같은 동지를 살려주고 있었습니다. 몇 초 되지 않았던 장면이었습니다만, 오늘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을 맞이하며 황량함과 연연하는 우리의 무한반복적인 삶을 탈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요 

 그 방법은 모두가 피하고 싶은 내 마음의 황량함의 상태를 제대로 알 때만이 진정한 구원도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첫 머리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 병을 고쳐주셨다.” 복음과 치유를 황량한 곳에서 하시고 계십니다. 여기서 알게 됩니다. 우린 내 상태의 황량함을 벗어나고 도망가기에 급급하면 안되고, 오히려 받아들일 때에야 기적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그 기적은 내가 연연하고 있던 곳에서 실현이 되며, 여기서 진정한 발견은 당신의 축복과 빵을 나누는 현장 속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조금 있으면 모두 빵 하나씩을 받을 것입니다. 두 개씩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하나씩 같은 크기로 받습니다. 고린토 11017절의 말씀을 끝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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