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8주 수요일

2013. 5. 29. 오전 8:30:54

글자

연중 제 8 주간 수요일

우리는 기도하면서 주님과 어떤 관계이기를 원하십니까? 단순하게 ‘주님과 가까운 사이이지요.’ 하고 답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그 관계를 좀 더 세밀하게 들어가 본다면 순수하게 당신을 따르기 위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무엇을 바라고 당신을 따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태에 다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올바로 바라볼 때야말로 우리의 신앙의 현주소를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께서 수난을 받을 것이라 예고하십니다. 그러나 철모르는 야고보와 요한은 그저 예수님 앞으로 달려나가 “영광을 받으실 때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라고 청합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란 재차된 질문에도 그저 그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할 수 있습니다.”를 응답할 뿐입니다. 여기서 더 가관인 것은 자기들이 먼저 그러한 말을 못했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제자들의 불쾌한 반응입니다. 질투, 먼저 얘기 못했음의 안타까움 등 말입니다.

그분의 온전한 죽음, 그분의 온전한 낮아짐이 모든 구원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이 되었는데 제자들은 그저 예수님의 지금의 모습에서 박수를 보내고, 이것이 전부인 줄 압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자리를 맡고 싶어합니다.

우리도 교회 내에서 무언가를 맡고 있고, 경우가 되시는 분은 본당이 아닌 더 큰 곳에서 일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자리를 이용하여 같은 신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권위를 이용하여 제재를 가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큰 상처를 안게 되어 교회를 떠나시는 분도 생기곤 합니다. 어느 누가 그들을 아프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어느 누가 직분을 이용하여 자기 만족을 채우라 하였습니까? 같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모든 이의 종이 되야 한다.’ 는 가르침은, 서로 높아지려 여기는 이 시대에도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그 자리라는 것들이 결국엔 사랑의 실천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우리가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자리는 그야말로 단순하고 하염없이 순수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떤 욕심도 없습니다. 오늘도 기도하면서 그 안에 불순물이 없고 오직 당신의 뜻만으로 채워짐이 허락되도록 우리 자신을 정화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댓글 1

  • 2013년 6월 1일 오후 5:5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