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심 대축일
부제품을 포함하여 성직자 반열에 든 지 벌써 10여년이 됩니다. 오늘 예수 성심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있었던 작은 서약식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구 사제로 산다는 것은 마치 아무 색깔도 없는 단순한 수묵화처럼 보입니다. 그냥 본당에서 비슷한 생활들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 단순하고 비슷해 보이는 먹빛 안에는, 참으로 다양한 빛이 숨어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검은 색이라고 다 같은 검은 빛이 아니며, 회색이라고 다 같은 회색빛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도 참으로 단순해 보이는 교구사제의 삶에서 저만의 다양한 빛깔을 내며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는 카리스마이지만 오히려 초월로 들어가는 영성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도회 소속이 아닌, 세상에 사는 재속신부입니다. 뭔가를 내세우고 표방하는 수도회가 아닌, 아무 색깔도, 냄새도, 특징도 없어 보이는 교구신부가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동안 제가 생활 계획표를 수 없이 짜보았지만 그 때마다 찢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 삶이 제 뜻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은 쉽게 얘기 합니다. ‘신부님이면 성당 대빵이잖아요?’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라서 그렇게 보이지만, 실은 그런 결정을 할 수 있기 위해서 남의 말을 계속 들어야 하고, 여러 절차가 필요하며, 그렇게 하다보면 자기가 세웠던 계획적인 삶과는 멀어집니다. 일정한 시간에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 날 때를 찾아서 기도해야 하고, 퇴근시간이 따로 없기에, 남들 자는 시간에도 갑자기 병자 방문을 하러 뛰어나갑니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교구 신부의 삶은 바로 예수님의 삶, 그 자체입니다. 항상 교우들 곁에서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며, 좀 더 바른 방향이 되길 뒤에서 기도합니다. 그 사람이 고집을 피우더라도 말이지요.
독서와 복음에도 나왔듯이, 양을 돌보는 목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갑자기 위험한 늑대가 나타났다고, 목자가 먼저 겁을 집어먹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양을 돌보는 목자가 먼저 도망가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지금 이 곳에 양이 많다고 딴전을 피우거나 다른 곳을 기웃거리면 안됩니다. 목자는 양 곁에 있으면서 어떻게든 양이 편안할 수 있도록 좋은 땅으로 인도해야만 합니다. 저희 신부들이 여러분 옆에 너무 당연스럽게 살고 있기에, 그야말로 희소성이 없어 보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가 없어지면, 여러분도 흩어집니다. 그동안 열심히 쌓아온 것이 물거품이 됩니다. 주님이 원하신 삶을 잘 찾아 갈 수 있도록 서로 기도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