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이사야 61,9-11;루카 2,41-51
예전 저희 어머니가 지나가는 소리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아휴 우리 곽 신부님이 어린 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그러면 이 엄마도 젊을텐데..’ 물론 우린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요.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계속 흘러간다는 사실을요. 머무르지 않고 물처럼 흘러간다는 것을요. 무슨 동상을 세워놓듯이 내가 사는 곳에 딱 고정시켜 놓고 싶지만, 마치 모래를 움켜쥐면 그 모래가 움켜쥔 채로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슬슬 손에서 빠져나가듯이 흘러가 버린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우린 이것을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형상을 세워놓으려 하기보다는 그 흘러가는 움직임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가를 봐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가족과 친지를 벗어나서 성전에 계시던 소년 예수의 당돌한 한 마디는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였습니다. 보통 부모 같으면 그 말에 당장 혼을 낼 것이 뻔했던 이 상황에서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 였습니다. 어이가 없었을까요? 즉 멍~ 하니 듣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성모님의 이런 반응 속에서 우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프랑스의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린 내가 예상한 정도의 어떤 결정적인 절대가치를 부여하지 않아야 한다.’ 즉 우린 어떻게 만들어진 형상이 아니라 그 활동의 움직임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모님을 대단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면이 이것입니다. 성모님은 현재 소년 예수를 보고 있지만, 실제로 그녀가 만나고 있었던 것은 하느님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낳은 아들이 하느님임을 알고 있었기에 본인의 아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었지만 그저 듣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우리가 따라야 하겠습니다. 루카 복음 18장 22절에 있는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거든 간에 그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솔직히 말해 우린 하느님의 뜻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지금 내가 차 안에 앉아 있는데 교통 표지판에 ‘우회전을 하면 수유역이 나온다’ 는 표시가 나온다면, 현재 있는 곳이 수유역이 아니더라도 우회전을 하면 얼마 안 있어 수유역이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린 그렇게 도로 위에 있습니다. 아직 목표점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길을 계속 간다면, 만날 수 있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저 앉을까요? 당장 안 보인다고 내 맘대로 좌회전으로 핸들을 꺾을까요? 현재 나는 당신의 뜻하심이라는 흐름 위에 내가 있습니다. 이젠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