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2013. 6. 11. 오후 3:4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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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욥기 1장 2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야훼께서 주셨던 것, 야훼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야훼의 이름을 찬양할지라.”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 이렇게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그의 믿음을 보면서 우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저 성경 속의 인물이니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않는가? 라고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때는 부자로서 살았지만 그 부유한 재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았는가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바라본 재물은 그저 주님을 찬미하기 위한 도구로서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기에 당장 그 도구가 없어졌다 해서 그리 슬퍼하지만은 않습니다. 원래부터 주님의 것이란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기에 없어졌다고 불편할 지 언정 불만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에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는 말씀을 하십니다. 멀리 떠나는 사람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것저것 꾸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말리는 모습을 우린 어떻게 봐야 하겠습니까? 그저 성경 속의 인물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오늘 기념일을 맞이하는 바르나바도 사도행전 4, 37에 보면 자기 소유의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와 예루살렘의 사도들을 향해 내놓습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쓰고, 축적하고, 내어 놓는 재물의 모습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나를 지켜주는 힘이라 여기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자신을 지켜주는 힘의 원천이 언제부터 재물이었습니까? 마태오 6,26에 보면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 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 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새보다 귀한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믿기에 마음을 못 놓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도 수많은 재화와 재물을 만지고, 원하고, 정리하는 가운데에서 과연 우리는 누구의 힘으로 살고 있습니까? 주님이십니까? 다른 것입니까? 삶의 원천의 힘이 무엇인가 따져볼 때 우리의 모습은 그분과 닮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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