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학자 기념일. 2고린 3,15~4,6;마태 5,20-26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라고요. 한편으로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요. 하지만 한편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것도 숨어있습니다. 즉 어쩔 수 없다는 사정 밑에, 실은 ‘나 자신을 놓아 버렸던 것’ 은 아니었는 지 말이지요. ‘나 자신을 놓아 버린다’ 는 말은 이런 말입니다. 주님의 것과 현실이 부딪힐 때 현실에 부응하고 마는 것이지요. 물론 삶의 위기는 매 순간마다 닥쳐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그 사정을 지켜보거나 견디거나 했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 그저 내 성격에 못 이겨서 가장 빠른 방법인, 내 성격대로 해 버린 그런 경우를 말하는데요. 좀 더 주님의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을, 남들이 하던 방법을 쉽사리 쓰면서 나중에 돌이켜 볼 때, 그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을 ‘나 자신을 놓아버렸다’ 고 쓰는 말인데요.
주님의 방법은 많은 경우가 비밀에 부쳐져 있습니다. 그저 현실적인 사람은 잘 못 알아듣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 비유나 설명을 어렵게 하셨던 이유도 하늘나라는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의 것, 선택받은 사람들의 것,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의 것이 되지 않게 하시길 원하셨습니다. 왜냐구요? 보물도 그 가치를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 가질 때 진정으로 가치가 있으니까요.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쓰레기일 뿐이니까요.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의 복음이 가려져 있다 하여도 멸망할 자들에게만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그럼 선택받은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늘나라의 비밀을 아는 이들은 주님의 의도를 알아채어야 하겠지요.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못하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나 자신을 놓아 버리지 않고 그분의 선택사항에 맞추는 것. 그것이 구원으로 가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오늘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학자 기념일입니다. 이 분이 설교가로 유명할 수 있었던 것도 평소 주님께서 원하신 바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원하는 것도 해야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둘의 관계는 탄탄한 관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던 제일 빠른 방법에서 벗어나, 당신이 원하시는 방법을 다시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비밀스런 당신의 참 뜻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