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심 신심 미사. 요한 15,9-17
여러분이 갖고 있는 사랑을 혹시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예전보다 보여지는 것이 중요시 되는 세상이라면, 현 시대의 문제점만을 탓하기보다 요즘 세대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도록, 느껴질 수 있도록 잘 설명해 주는 것도 필요할텐데요.
우리의 사랑은 우물물 같은 사랑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야곱의 우물’처럼 말이지요. 야곱은 구약시대 사람이지만 ‘야곱의 우물’이란 명칭은 신약성경에서야 나옵니다. 야곱이 파 놓은 우물을 후손들이 길어 먹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요? 이처럼 우물은 참 귀중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귀중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은 계속 퍼 올렸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물이 귀하다고, 내 사랑이 소중하다고 가만히 나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이 유입될 수 있는 물줄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우물을 계속 퍼 올렸기에 그만큼이 찰 수 있는 것도 참으로 신비라 하겠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은 계속해서 나눌 때에야 유지될 수 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행복은 어디에도 없다. 다른 사람들과 나눌수록 커지는 행복이야말로 우리를 진정 행복하게 한다.’ 이처럼 사랑은 흘러야 하는 속성을 가집니다. 흐르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때, 자연히 욕심과 집착은 사라집니다. 붙들어 메어둘수록 가지고 있던 사랑은 말라버릴 것이고 샘솟는 것도 그쳐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말씀하신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쳐다봅니다. 예전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하셨듯이 그 사랑의 정신을 이해할 때, 나의 사랑은 끊임없이 솟아오를 수 있으며, 나의 사랑이 사람을 참되게 사랑하고 주님을 찬미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께서 먼저 채워주셨습니다. 이제 그 사랑을 퍼 줄 때, 이 사랑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