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목요일. 고린토 2서 11,1-11;마태 6,7-15
며칠 전 삼성역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에서 40m정도 떨어진 곳에서 깃발을 꼽고 무언가 선전을 하고 있는 리어카가 보였습니다. 여러분도 이야기 들은 바 있는, 14만 4천명을 모으겠다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공부를 시켜주겠다는 문구를 붙여 놓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런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마태복음 11장에 있는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집단이 나오면서 사람들은 우루루~ 몰려갑니다.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것이 없는가 기웃거리면서 말이죠. 마트에도 새 상품이 들어오면 신기해하는데, 종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올드한 천주교보다는 신상품 종교가 현 시대에 맞게 내 맘을 헤아려 줄 것이란 기대를 하면서 넘어가는데요. 그럼 그들이 말하는 성경에 모든 진리가 다 실려 있는 것일까요?
며칠 전부터 저는 다음 달부터 진행될 공의회 문헌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계시헌장’입니다. 계시헌장은 그야말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4항의 내용을 보면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계시라는 것은 창세기 시절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있으며, 재림하실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어지기에 다른 공적인 메시지는 없다.’ 고요. 즉 계시의 완성은 성경에도 다 들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저 보충일 뿐이지요. 그러므로 성경이 곧 계시가 아니라, 계시는 살아있는 그리스도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경공부를 다 한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 안다고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단체는 성경이 모든 것인 양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작은 것을 가지고, 마치 전부인양 흔들어 대는 꼴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계시는 그 범위를 넘는 차원인데 말이죠.
바오로 시대도 이와 비슷했나 봅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선포한 예수님과 다른 예수님을 선포하는 데도 여러분이 잘도 참아주니 말입니다.” 왜 우린 그들의 손짓에 흔들리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그 유명한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에는 뭔가를 바라고 비는 기도도 실려 있지만, 하느님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책만 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깨달음은 글자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린토 2서 3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실상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여러분 진정 살고 싶습니까? “그들을 닮지마라” 라는 말씀 속에서 어느 것에도 메이지 않았던 그 분의 참된 계시를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