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간 수요일 탈출기 3,1- 12; 마태 11,25-27
여러분에게 보석이 생겼다면 이를 어디에 두겠습니까? 다이아몬드, 금붙이, 진주 등이 생기면 어떻하시겠어요? 목에다 거실까요? 아니면 손가락에 끼우고 자랑을 할까요? 아니면 장롱 안에만 박혀둘까요? 예전에 허영만이라는 만화가가 그린 ‘부자사전’ 이란 책을 보았습니다. 식객이란 만화를 그린 사람인지라 부자를 찾아다니며 그렸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거기 나오는 부자들은 떵떵거리면서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것 보다 못하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집도 허름하고, 돈 있다는 티도 안 내고.. 그래야 남들이 꿔달라는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린 어떻게 합니까? 있으면 ‘티’ 냅니다. 당연히 그러다보면 자랑하는 사람을 쉽게 못 보지요. 부러워하고, 가지고 싶어서 범행도 저질러집니다. 도덕경 70장에 나오는 피갈회옥[被褐懷玉] 이라 하여 거친 베옷을 입었지만 그 안에는 옥을 품고 있다는 말이지요. 어쩌면 우리 신앙인의 모습도 그런 것 같아 보입니다.
오늘 하느님은 모세에게 약속을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 그는 솔직히 하느님도 잘 모르고 그 분이 어떠한 힘을 지니셨는 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지금 약속만 받았을 뿐 아무 것도 이뤄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표징은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시작되는데요. 막 세례를 받은 예비자 분에게 비슷한 질문을 해봅니다. “세례 받고 뭐 달라진 것이 있나요?” “없는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예전의 생활과 비슷해보입니다. 저도 사제품을 받고나서 교구에 인가가 난 신부이지만 ‘얼떨떨하고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사를 드리고, 성사를 주면서 이 힘이 무언지를 깨달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시다는 것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누구는 기도회에 가서 여러 뜨거운 체험을 했노라고 자랑을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에 ‘내가 잘 하고있는 건가?’ 의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벌써 이만큼 오셨고 그동안 해 온 삶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함께 하심이 무엇을 말하는지를요. 부자들은 자기만 위하기에 허름하게 살지만 우린, 가난한 가운데에서 계속 보화가 쏟아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