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일
7월 셋째 주간인 이번 주일은 농민주일입니다. 그들의 수고와 노력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비록 요사이 폭염과 홍수로 피해를 입었지만, 그들의 땀 한 방울은 실로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언제 씨를 뿌려야 할지, 언제 물길을 터줘야 하는 지, 비료를 주고 김 메는 시점은 어느 때인지, 그리고 언제 열매를 딸 때 당도가 제일 좋을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저 책에 쓰여 있는 것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요. 그런 감(感)을 익혀 행하는 모습은, 마치 기도하는 우리네들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내 기도가 이뤄져 가는 가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1독서는 창세기 18장의 이야기입니다. 요즘 같이 한창 더운 계절에 갑자기 세 사람이 아브라함 앞에 당도합니다. 아브라함이 보기에도 처음 본 이들이, 과연 귀인들인지 아닌 지를 어떻게 알고 음식을 차려내었을까요? 사실 설명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으로 알아차립니다.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는 몰라도, 아브라함은 분명히 귀한 분으로 알아차렸습니다. 그렇기에 소홀하게 대하지 않았지요. 사실 창세기 15장에도 나와있듯 “너에게 후손이 생길 것이다.” 라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아내 사라의 잔꾀로 말미암아 이스마엘이 태어난 후로, 집안이 매우 시끄러웠던 때였습니다. 이런 때에 그들을 귀한 손님으로 대접한 아브라함의 판단의 근거는 쉽게 콕 짚을 수 없는 ‘영적인 판단’입니다. 그 판단이 얼마 안 있어 이사악이 태어날 것이라는 약속을 얻어내지요.
모든 것을 데이터로 산출하고 계산해 내는 이 시대에도 이런 감각은 필요합니다. 수 많은 경영진과 투자가도 부러워하는 이런 감각은, 기도하는 우리들도 알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그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물적인 획득을 원하겠지만, 우린 어느 것이 더 좋고 옳은 것인가? 를 선택하는 분별의 힘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에 마리아는, 그저 그 분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만 있습니다. 그녀가 특별히 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듣는 것 뿐입니다. 분명 바쁘고 고생하는 사람은 언니 마르타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마르타의 수고가 헛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주목할 사항은 이것입니다. “활동 중심주의가 평가받는 이 시대에 오히려 때를 알고 준비하는 삶을 갖자.” 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왔지만 마침 자기 집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는 행운을 얻어냅니다. 그럼 그런 기다림의 세월을 가진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냥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중한 사람을 만났을 때 행하는 실수가 이런 것입니다. ‘내가 말할 이야기 준비하다가 그 사람의 이야기를 제대로 못 듣는 어리석음’ 입니다. 그걸 우리가 또 반복해야 할까요?
사랑하는 수유동 본당 교우 여러분~
한 마디의 말도 흘러가고, 한 사람의 인연도 흘러가고, 주님의 부르심도 바람처럼 흘러갑니다. 하지만 누구는 알아차리고, 누구는 놓치고 후회하고, 또 누구는 그게 왔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마리아처럼 살기 위해 평소에 천천히 잘 깨달아 가는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