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간 목요일

2013. 7. 17. 오후 10: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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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5주간 목요일. 탈출기 3,13-20; 마태 11,28-30

여러분의 의견을 반대하는 사람을 만나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대다수가 이런다죠? 뒤에서 욕하거나, 혹은 같이 싸우거나, 싸움이 안 될 것 같으면 피하거나.. 그런데 주님은 당신을 반대하는 사람마저도 당신의 뜻으로 이끄시는 힘을 가지시는데요.

얼마 전 비행기 사고가 나서 아픔을 겪었지만, 이 비행기가 공중에 뜨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줄 아십니까? 그건 바로 공기의 저항입니다. 잘 날기 위해서 오히려 반대되는 저항 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어쩌면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공기의 저항이 있어야만 비행기의 동체를 띄울 수가 있지요. 오늘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집트 임금은 너희를 내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므로 나는 손을 내뻗어 이집트에서 온갖 이적을 일으켜 그 나라를 치겠다. 그런 뒤에야 그가 너희를 내보낼 것이다.” 역대기 하권에 보면 하느님께서 예레미아를 시켜 하신 말씀을 일으키려고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여 칙령을 반포케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반대자를 통하여 하느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를 오늘 말씀에서도 드러내시려는 장면인 것입니다. 그 유명한 갈멜 수도원의 개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이야 관상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당시는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개혁하려는 십자가의 성 요한을 다락방에 가둘 정도로 반대는 극심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를 가지고 오히려 참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시는데요.

 대다수 사람들은 반대자를 만나면, 오히려 자기 계획을 관철시키기 위해 반대세력을 없애거나 또는 피하기에만 급급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당신의 일을 하시기 위해, 반대되는 세력이 자기 일을 하도록 그냥 놔두십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한 부끄러운 행동을 그들 스스로 느끼게 하십니다. 마치 아마데우스 영화대사처럼 말이지요. 모차르트를 다룬 예전 영화, 아마데우스의 마지막 장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평생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질투하고 끝내 그를 죽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신병원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모차르트를 죽이게 하고나서 신은 32년간 나를 고통 속에서 살게 했소. 아주 천천히 시들어가는 나를 주시하게 만들면서 나의 음악은 희미해져 갔고 아무도 연주하는 사람이 없어졌지. 하지만 그의 음악은 지금도 이어지지..” 예전 그 때의 그 반대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 죽어갔을까요? 이제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당신이 말씀한 멍에와 짐은 그래서 가볍고 편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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