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간 월요일. 창세 28,1-22;마태 9,18-26
나는 어떤 때에 주님이 세상에 계시다는 것을 알까요? 정의가 이기는 것을 보았을 때? 성경을 읽어서 체험을 할 때? 내가 뭔가가 잘 되고 있을 때? 아마 아닐 것입니다. 정의가 이기는 것을 보면서 한편 정의롭지 못한 면을 돌보아 주지 못했으니 주님이 온전히 계시는 것은 아닐 꺼구요. 성경을 읽는다는 것도 적나라하게 얘기하자면, 이미 지나간 일을 되새기는 차원입니다. 내가 지금 뭔가 잘 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실은 영원하지는 않는 이야기지요. 그럼 언제 주님이 세상에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할까요? 전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요.
지금 강론을 들으시면서도 주님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 강론은 할 필요가 없겠지요. 독서와 복음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실은 눈을 감고 있다거나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이것 또한 느껴지지 않는 것이겠구요. 봉헌성가를 하면서도 자신이 뭘 봉헌했는지 모른다면, 이것도 문제이구요. 성체를 잘 모시고 나서도 집에 가서 예전의 버릇을 의식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다면, 이것도 주님을 의식하지 못한 행동일 것입니다.
오늘 야곱은 말합니다.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내가 있는 지금의 현장에서 주님을 생생하게 느끼고 계십니까? 회당장의 딸이 살아난 것도, 혈루증 앓는 여인이 비록 슬그머니 예수님의 옷자락을 손에 대었던 것도, 자기 안에 주님을 모시고픈 열렬한 아버지의 마음과 여인의 마음이 진정한 생명을 체험케 하였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이들에게서 하느님의 기운이 샘솟고 있습니까? 그리고 오늘 만나게 될 이들에게 그런 기운을 뿜어주실 수 있습니까? 내가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지 못하였다 하여도, 내가 사는 이 공간은 이미 하느님의 세상이라면, 나는 이미 세상에서 당신을 만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만나고 있는 사람처럼 살아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