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4 주간 수요일. 마태오 10.1-7
우리는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한다.’ 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그런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기회 속에서 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가온 여러 조건들이 과연 기회인지 아닌지 판단할 줄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잡기보다는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12제자를 부르시면서 이런 분부를 하십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무 소중한 복음이기에 먼저 구원받을 이스라엘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에게 굴러온 복을 걷어차는 행동을 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예수님이 처음 소명을 느끼셨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제일 먼저 가르치려 가신 곳은 바로 어릴 때 사시던 나자렛 마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복음이기에 그 좋은 것을 그 누구보다도 예전 알던 사람들에게 나눠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한 마음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라고 되어있듯이 인간 예수의 외면적인 모습만 보았기에 믿음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기회 제공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외면합니다. 루카복음과 마태오 복음에 보면 혼인잔치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비유에는 어떤 사람이 혼인잔치를 베풀어 사람들을 초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때가 되어 그 집 종이 찾아가 초대된 사람들을 부르니 초대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면서 “나는 방금 장가를 갔다. 소를 샀는데 부려봐야 한다.” 하며 그 초대에 참여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거리에 나가 아무나 다 초대하여 집을 가득차게 시킵니다. 처음 계획과 다르게 돌아간 이유는 그들이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작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먼저 기회가 제공되었음에도 이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진정한 구세주로 믿고 있는 것이지요.
내 삶에도 이런 안타까운 현장은 없는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당신은 부르시는데 나는 다른 곳에서 헤매는 것은 아닌 지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