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야고보 사도 축일
우리가 당연시 여기고 있지만 실은 잘못한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의 실수담, 예전에 했던 잘못했던 일들을 잘 털어놓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꾹꾹 눌러서 남이 보지 못하게 하지요. 그래야 창피당하지 않는다고 여기니까요. 하지만 계속 이렇게 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남에게는 안 보여줘서 모른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실제로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 상처를 계속 안고 사는 셈이지요. 하지만 털어놓는 사람은 거기서 해방된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요.
예전 신학교 2학년 때, 저희 동기들이 쭉 앉아있는 자리에서 영성담당 신부님이 이런 제의를 해 왔습니다. ‘여러분이 신학교에서 같이 산 지도 1년 반이 넘었으니까, 서로에 대해 부족하고 아쉬운 것을 얘기해보는 시간을 갖자.’ 고요. 실제로 출퇴근 하는 삶이 아니라, 같이 숙식을 하고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는 사이이기에, 게다가 신부님도 말씀하셨고 저도 개방성을 갖고 얘기를 시작했는데요. 하지만 그 친구는 마음이 열리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었나 봅니다. 그만 인상을 찌뿌리더군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그렇지요. 잘 안 보여주고 싶어하고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오늘은 야고보 사도의 축일입니다. 사실 성경책은 많은 인물들의 과거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모세가 사람 죽인 이야기, 요나가 하느님의 사명을 하기 싫어 도망갔던 이야기, 베드로가 배반한 이야기, 바오로가 사도들을 잡던 전력이 있던 사람이었다는 이야기 등등. 만약 내가 복음서나 서간을 쓰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이야기는 다 지우고 좋은 이야기만 남겨 놓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속의 인물들은 그야말로 실수투성이들입니다. 게다가 복음의 이야기는 야고보의 엄마까지 한 몫을 하며 치마 바람을 일으킵니다.
며칠 전에 칠레에서 선교하는 신부님의 글이 교회신문에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릴 때 알던 분이라 반가왔는데요. 그 분의 실수담은 이러했습니다. 칠레의장례식은 문상객들이 죽은 이의 관 앞에 앉아 2~3시간을 조용히 앉아 보낸답니다. 처음엔 우리의 '연도'라는 아름다운 풍습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돌아가신 분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고 말하고 노래를 하고, 성경을 읽게 했답니다. 그런데 공소회장이 "개인적으로 기도하게 해달라" 고 부탁해왔답니다. 그 신부님이 이유를 묻자 "지금까지 기도를 잘 해왔는데, 신부님 때문에 시끄러웠다. 기도하는데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충격이었고. 창피함과 분노가 밀려왔답니다. 공소회장을 바꿀까도 생각했답니다. 너무 기가 막혀 다른 분에게 물었더니 "신부님이 우리를 이끈 정성은 좋은데, 우리에겐 큰 방해였다. 자기네는 죽은 이를 어릴 때부터 봐왔고, 학교생활도 같이 하면서, 수십 년을 같이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례식 때 2~3시간 동안 그 추억을 반추하는 것이라고 했다. 죽은 사람 앞이지만 용서를 구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시간을 보낸다.“ 고 말했답니다.
실수했던 시간을 남에게 얘기한다는 것은, 우리에겐 창피한 이야기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진정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12제자들의 부족했던 예전의 삶을 읽으면서 혀를 끌끌차고 불쌍하듯 쳐다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그 이후에 변모하였고 승리자의 삶을 살았으니까요. 우리도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잘 털어놓으면서 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옮아 갈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