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마냥 기어만 다니던 애벌레가 번데기를 탈피하여 나비가 되어야 하듯, 신앙인도 그러한 경험을 해야 할 때가 옵니다. 마냥 기어만 다니는 것이 나비의 참 모습은 아니지요. 마찬가지로 신앙을 통해 가지고 있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이 필요한데요. 그렇다면 저는 어땠을까요? 간단하게 제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세속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길 원했습니다. 뭔가 드러나는, 그러면서 나의 재능을 펼치는, 믿지 않으시겠지만 그 당시 성격은 서글서글했고 꽤나 덤벙거렸습니다. 그러다 부르심이 왔습니다. 부르심과 나의 꿈을 저울질 하다가 꿈이란 ‘나만의 것을 추구하는 삶일 때가 더 많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자, 부르심을 통해 하느님과 함께 할 때, 내가 만나지 못한 진정한 세계로 초대 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삶이 변해왔습니다. 인성검사나, 성격검사를 하면 10년 전과 지금이 180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때는 외향적이었는데 지금은 내향적이랍니다. 왜 그럴까?를 보았습니다. 제 삶이 교우들의 영혼 구원과 관계된 것이기에, 마치 의사들처럼 모든 사안을 세부적으로, 심도있게,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전처럼 덤벙거리며 살았다면, 아마 이 길을 버틸 수 있을까요? 판단 하나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일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은 좋아 보이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기도 안에서 똑같은 것을 계속 들여다보며 그것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흐름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예전의 삶을 주변인들은 더 좋아라 할지 모릅니다. 편해 보이니까요. 허나 제대로 짚어주지 못한다면,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지 못하는 신부라면 좀 솔직히 끔찍합니다. 물론 너무 치우쳐 있는 것도 좋아보이진 않을 것입니다. 계속 다듬이 가야 하겠지요.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사건을 통하여 우리도 자신의 삶에 맞는 ‘거룩한 변모’ 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변모가 되어갈 때, 예전의 자기에 주저앉지 않고, 더 큰 차원의 세계로 초대받을 수 있는 문을 열어갈 때, 나는 제대로 된 주님의 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