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민수 20,1-13;마태 16,13-23
어떤 분과 자리를 하는데 그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다시 추기경님이 나겠지요?’ 물론 지금엔 은퇴하신 추기경님만 계시기에 그런 염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교황청에서 한국에 새로운 추기경님을 내실 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는 없지만, 교황청에서 생각하는 한국교회는 예전과는 다른 시각인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예전에는 성장하는 교회이길 바랬지만, 지금은 안정된 체계 속에서 나아가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추기경님이 나오면, 여러 가지로 가시화가 되고 그로 말미암아 교회가 번창되는 것이 보이겠지만, 오히려 그것보다는 지금의 체계에서 다른 아시아 가톨릭 국가와의 연대감을 이뤄지기를 바라는 모양인데요. 이런 모양새를 보면서 우리의 염원과 그 분의 시각의 차이를 보면서, 한편으로 ‘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평불만입니다. “어쩌자고 당신들은 이 광야로 끌고와서 우리와 가축을 여기에서 죽게 하시오?” 사실 이런 불평이 그들만 그랬겠습니까? 우리도 그러고 있지요. 베드로도 그렇습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는 약속을 받을만큼 신임을 얻지만, 주님의 사명을 듣자마자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린 시각의 차이의 극복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이 믿음의 관건이라 보여집니다.
오늘은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입니다. 도미니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초대교회처럼 청빈한 삶 속에서 정통교리를 수호할 때만이 다른 이단에서 이겨 나갈 수 있다’고요. 우리의 생각과 욕심은 떨궈낸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계속 솟아납니다. 한 때는 좋았을지 몰라도 다시금 나의 생각으로 가득찹니다. 이럴 때에 사람들의 반응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관점에서 빠져서 그것을 해 내고야 마는 사람이 있고요. 둘째. 자기의 생각을 계속 다듬으면서 과연 맞는 것일까?를 보는 사람이 있고요. 셋째로 그냥 무턱대고 자신을 접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뭐가 옳을까요? 그렇지요 두 번째이지요. 정통교리에 맞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 속의 참다운 당신의 뜻을 헤아려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많이 배웠다는 사람일수록 잘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판단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빠른 만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수도 많습니다. 좀 느리더라도 잘 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