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2013. 8. 1. 오후 6: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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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탈출40,16-38;마태 13,47-53

20세기 프랑스 소설 중에 최고의 걸작으로 뽑히는 작품이 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입니다. 작품의 배경인 1930년대의 유럽은 무신론이 번져가고 반교권주의가 펴져가던 시대였습니다. 요사이 유럽 교회 풍경이 보여주듯, 완전한 하느님을 찾으면서 평안을 누리기보다는 오히려 불완전한 자신 안에 머무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시대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죄를 짓더라도 내가 짓는 것이니 신경쓰지 말라 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그 시골 신부님은 남들이 얘기하는, 성공적인 사목을 하진 못합니다. 그 곳 신자들의 신심은 점차 희미해져가고 있으니까요. 며칠 전 있었던 우리 본당 어린이 캠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답니다. 한창 캠프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한 아이가 없어졌답니다. 알고보니 없어졌다는 아이의 부모가, 자기네 가족 휴가날이라면서 신부님께 얘기도 하지 않고 그냥 데려가 버렸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교회란 무엇하는 곳인가?, 담당 신부는 무얼 해야하는 사람일까?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단순히 캠프 하나만을 위해 집을 떠나온 것은 아닌데 말이지요.

  오늘 복음 말씀을 들으며 한편으로는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세상 종말이 올 때, 의인들 가운데 악한 이를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야만 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하고요. 참으로 착잡하겠구나 여겨졌습니다. 마치 농부가 수확이 다가와 시장에 내놓을 열매를 고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어쩔 수 없이 벌레먹고 떨어진 과일은 치워버려야 하는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과 많이 닮아 보입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알퐁소 데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님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모양입니다. 자신이 세웠던 구속주회가 두 개로 갈라지는 아픔을 보았고 다시 합쳐지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정으로 보자면 실패한 주교였다고 말할 지 모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이지요. 한 때 사람들이 많이 따랐다고 하지만, 끝내 그런 죽음에 이르렀다면, 그 또한 남들이 칭송하는 사목을 했다곤 보진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까요? 그 소설에 나왔던 신부의 마음은 찢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영혼을 우직하고 소박하게 사랑했습니다. 지금 당장에 만족하기보다 남은 기간을 지혜롭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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