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간 화요일. 탈출 33,7-28;마태 13,36-43
여러분보다 나이는 별로 먹진 않았지만, 점차 살아보면서 개인적으로 궁금하고 두려워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내가 죽게 된다면,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 주고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알던 사람이 죽게 되었을 때, 장례식장에 가면, 그동안 그 사람에 대해 느껴온 이런 저런 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잖습니까? 그렇다면 정작 내가 듣고 싶어한 말과, 상대방이 그동안 느껴왔던 말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날까? 하는 점이 참으로 궁금하게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것이, 주어진 시간을 살면서 자기의 모든 진정성을 다 보여주면서 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에는 겉과 속을 다르게 표현하기도 하고요. 마음이 100이었다면 표현은 20밖에 못한다던가, 하는 그런 모습 때문이지요. 당연히 표현을 조금밖에 안하고 산 경우라면, 사람들은 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구요. 장례식장에서 고요하게 죽어 있지만 실제로는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나 억울하다. 하고 소리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오늘 복음 말씀은 밭의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쉽게 말해 ‘수확’이라는 세상의 끝이 왔을 때, 사람이 해 왔던 결과물에 따라 천국도 가고 지옥도 간다는 것인데요. 그러나 세상을, 나 혼자 살아오진 않았습니다. 우리 주위에 많은 사람들과 영향을 받고 끼치며 살아왔습니다. 독서에 모세가 말합니다. “주님,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이렇듯 내 옆에서 누군가가 부족한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독려해 준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라고 나의 진정성을 다 헤아려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좋은 결과물이 될 수 있도록 계속 관심을 기울여 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린 자신의 노력 뿐 아니라, 이들의 힘을 통하여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서로를 위한 염원을 갖고 있으니까요.
세상이 개인화가 되어가다 보니, 신앙심 또한 자기 혼자 힘으로 믿고사는 신앙을 더 바라고들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자기가 잘 가고 있는 지, 아닌 지에 대해서 확신이 서지 않고, 알지 못하는 문제가 생겨 버립니다. 이웃들이란 가끔은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들이 나의 생각을 읽어주기에, 나의 입과 손과 발이 되어주어 내가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들의 고마움 속에서 발전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