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간 화요일. 에즈라 1,1-6;루카 8,19-218
여러분이나 저는 다른 교우들과 확연히 차이나는 것이 있습니다. 우선 평일미사를 나오신다는 것부터 다른 분들과는 다르게, 주님을 대하는 ‘자세’ 와 마음가짐이 있는 분들이라 하겠습니다. 당연히 주일미사도 잘 참여하시겠구요. 짧게나마 기도도 꾸준히 하십니다. 꾸준히 하시기에, 주님이 바라시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더 잘 헤아리실 수 있을 겁니다. 그 분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에, 나와 뜻이 다르다고 하여 쉽게 좌절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배려와 포용력도 생깁니다. 주님과 우리가 이런 관계이기에 주위 이웃사람들과도 잘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앙칼지거나 성격을 독특하게 드러내지 않고 당장 도움의 손길을 주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랑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그런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우린 그러한 실천을 하고 있기에 주님의 형제, 자매라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 깊게 바라볼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삶이, 진정 ‘실행’ 이 되려면 먼저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를 거꾸로 알지요. 즉 보이는 사람을 사랑해야만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요. 물론 보이는 사람을 사랑해야 안 보이는 하느님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맞지만, 우리가 보고 아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약한 편입니다. 변덕도 심하고요. 올곧은 마음도 아니고요. 유혹에도 잘 빠지고, 그렇기에 남들에게 실망도 많이 하고 실망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완전한 분을 만나고, 그 안에서 참된 사랑을 배워야만 부족한 사람들의 마음도 더 잘 헤아려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이 루가복음 6장 38절에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주실 것이다.” 계산하는 사랑은 얼마 챙기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마치 이런 모습이지요. 밑바닥이 뚫린 항아리가 강물에 빠진 형상입니다. 분명 바닥이 뚫려 있기에 깨져서 못 쓸 것 같지만, 실은 물 위에서 둥둥 떠다니며 풍요로운 물이 가득 차 있는 형상입니다. 우리의 사랑도 그분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독서에 나온데로 다른 무엇보다 ‘하느님의 집’ 을 먼저 지으려 했던 마음이 그런 마음이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