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13. 9. 21. 오후 4: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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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중 잡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하나씩 갖고 있는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창시자이지요. 영화의 재미를 떠나서 대충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젊은 날의 스티브 잡스가 어떻게 회사를 세우고,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어떻게 쫒겨났으며, 쫓아낸 회사가 그를 왜 다시 불러 세웠는지에 대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의 성품은 그야말로 안하무인입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동안 같이 일한 동료도 바로 퇴출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여기서 저는 그가 왜 그랬을까?’ 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는 보고 있었습니다. 무엇을요? 비록 물건이 눈앞에 현실화 되지 않았지만, 이미 그의 머리 속에서 컴퓨터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보고, 터치하고, 검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요. 그런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여기서 예수님의 생애가 보였습니다. 사람들을 향해 화를 내시면서 성전을 정화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겠다고 하셨을 때,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호통을 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지만, 이미 그 분은 십자가를 너머 부활을 체험하셨던 것입니다. 이미 그 분의 세계에서는 그것을 보고 계셨기에 가능했던 일이지요.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누구는 교회에 와서 그냥 마음 편하게 있기만을 원합니다. 밖에서 듣던 잔소리도 피하고, 누구의 간섭도, 지시도 원치 않는, 내가 원할 때 내가 실천하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서 말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를 제대로 바라보는 사목자나 신앙인들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 한마디 하지요. 이미 그분들은 교회가 가야할 방향을 이미 보았기에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분들은 그것을 아직 보지 못한 상태이겠구요. 이것이 둘 간의 차이점이라 하겠는데요.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여 오늘 대축일을 맞이한 분들 중에, 성 정하상이란 분에 대해 말씀드려봅니다. 이 분은 그동안 자신이 보고 듣고 배웠던 교리를, 자신만이 느끼고 소화한, 3644자의 짧은 글인 상재상서라는 기록물을 남깁니다. 창조주요, 주재자이신 하느님을 확고히 믿으면서 동양적인 윤리관을 존중하는, 그야말로 남한테 배운 교리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곱씹어낸 교리의 토착화의 정신을 보여주었는데요. 이 글을 보면, 그는 이미 순교를 각오하고 있었고, 평상시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한 구원생활이 철저하게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는 이미 보았으니까요.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죽은 것처럼 보이고 고난으로 보이고 파멸로 보이는데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여기서 저는 이런 비유를 들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서예학원에 다녔습니다. 궁서체도 배우고, 왕희지체, 한석봉체, 추사 김정희체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배웠다고 해서, 그게 여러분의 것입니까? 그건 아니지요. 그건 그 사람들의 글씨입니다. 마찬가지로 정하상 바오로의 모습처럼 자기만의 신앙기록물을 써 보아야 합니다. 영성일기를 쓰건, 나름의 묵상노트를 사용하건, 블로그를 통하건 간에, 자기만의 신앙저작물을 정리해 보는 것입니다. 기록을 하면서 자신의 현재 신앙상태를 점검하고, 참된 주님의 마음과 얼마나 닮아있는 지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동안 유명한 분들이 가르쳐 온, 그분들의 신앙체험과 가르침을 들어오셨습니다. , 강의, 강론을 통해 말이지요. 하지만 들었다고 해서, 보았다고 해서 그게 여러분의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그건 그분들이 느끼고 체험한 것일 뿐, 여러분의 것은 아닙니다. 아까 비유처럼 서예를 배웠다고 해서, 자신만의 필치를 금방 가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계속 써야지요. 그래야 자기만의 글씨가 나오지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주님의 마음을 닮기 위해 여기 와 있습니다. 더 잘 닮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이 가르쳐주신 바탕 위에, 지금의 나의 삶을 얹어야 하겠지요. 그럴 때 나는 2013년이 바라는 순교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무언가를 보신 분들이니까요. 그렇게 해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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