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성모신심 미사

2013. 10. 4. 오후 10: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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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성모신심 미사

저는 성모님께 빚진 사람입니다. 때는 26살의 늦은 나이로 부르심을 받은 1998년도 그 때, 신학교에 가려면 다시 수능을 봐야 하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연극과 음악에 치중하면서 살아온 제가, 이제는 그 딴따라 인생을 청산하고 당신의 길을 가겠다고 그 길앞에 놓인 것입니다. 어느 하나 믿을 구석 하나 없었습니다. 남들 집안에는 삼촌이 신부님이네 수녀님이네 하였지만, 집안에 누구도 성직자 수도자가 나온 적이 없으며, 친척이라고는 모두 무교동에 사는 지 무교, 아니면 종교 박람회를 연상하는 잡다한 교파 투성이였던 집안에 무슨 성스런 바람을 주셔서 그 길을 가라하시는 지, 저는 알 수 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 부르심은 벌써 2년 전부터 계속 불어오고 있었지만 저는 아니겠지요?” 라는 유다의 말을 되내이며, 도망자 생활을 해오다가 이제는 막장에 벽에 부딪히면서 당신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학원에 들어가니, 예전보다 수학문제가 쉬어졌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지만, 여전히 풀 수는 없었습니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이를 타개할 만한 무언가를 찾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안에 성직자 수도자가 없으니, 기도해 줄 분은 그저 부모님뿐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쥐게 된 것이 바로 묵주였습니다. 어슴프레 성모님은 우리의 기도를 전구해 주신다는 교리가 생각나면서, 학원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묵주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추천해 주신 신부님은 친구도 만나지 말고 미사도 옆 본당에 다니라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그래야 마음 약하게 먹지 않고 딴 생각없이 공부를 할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그 10개월의 시간은 정말 외로웠습니다. 그 어떤 친구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너무 외로울 때면 세면대에 물을 크게 틀어놓고 눈물을 쏟아낼 정도로, 누구하고도 만나지 않고 오직 집과 학원만을 오갔습니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여학생이 오빠 거기에 가면, 의료보험이 돼?” 라는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할 정도로, 그런 보험이 있는 지도 모르면서, 앞 뒤 재지 않고 부르심에 응답한, 한편으로는 바보 같은 저 자신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묵주를 놓지 않았던 것은 그저 잘난 제 인내심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제 신부가 되고나서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저를 위한 묵주의 기도가, 이제는 저를 위해 바치는 기도가 아닌 기도가 되어 있었습니다. 미래에 만나게 될 교우들, 기도할 희망마저 잃어버린 이들, 그런 가난한 이들을 향한 기도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기도가 타인을 향할 때, 그 기도가 살아있는 기도가 된다는 사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부르심은 다 달랐지만, 결국 같은 길로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우린 성모님께 빚진 사람들입니다. 이 빚을 쉽게 갚을 수 없다면 결국에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닌, 다른 이들을 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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