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2주일
유학을 가신 우리나라 신부님이 전해준 이야기입니다. 외국 유명한 어떤 신학자의 이야기입니다. 자기를 당신 방 서재에 데려가더니 책을 보여주더랍니다. 그 방 안에는 3면의 책장이 있었는데요. 한 면은 자기가 쓴 책들. 또 한 면은 그 책을 여러 나라에서 번역한 책들. 그리고 또 한 면은 자기 책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논문을 쓴 논문집을 보여주더랍니다. 자랑하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순간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체험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여러 책을 썼고, 우리가 제목만 들어서 아는 신학대전을 편찬합니다. 이게 분량이 어떤가 하면 200페이지 책으로 치면 60권에 해당되는 어마어마한 양인데요. 그런 그가 마지막에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지요. ‘내가 체험한 하느님에 비해 내가 그동안 쓴 것들은 지푸라기로 여겨진다’ 고요.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난 무엇을 할 때 자랑스러울까요? 많은 이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나를 드러낼 때, 인정받을 때, 자랑스럽다고 말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드러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뭘까요? ‘내 실체를 인정하는 것’ 이겠지요. 그리고 그걸 넘는 분을 만날 때. 있어 보이는 것보다, 나의 민낯을 마주 대하며 더 나은 분을 만나는 것이 필요한데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순간 무서운 말이라 여길 지 모르지만 이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는가?를 묻고 계십니다. 식당에 앉아 식사할 때, 성호경을 긋거나, 버스에서 묵주기도를 하려 할 때, 신앙인임이 드러날까 두려워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물론 1독서 예레미아의 “가까운 친구들마저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처럼 주위 환경이 내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우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당신은 내 곁에 계셔주시는데요. 그래서 “주님께 노래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지 않습니까?
교우 여러분. 그래서 두려워할 것과 자랑할 것을 잘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