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월요일

2026. 6. 18. 오전 1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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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1주간 월요일

 ‘사랑이란 말에 대해서는 우리가 좋아하면서도 정의라는 말을 들으면 움찔거립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필요한 것은 알지만 그로인해 처벌과 사법행위가 집행되는 것에 대해서는 불편해 하는 모습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인데요.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교의 정의는 사법적 정의를 넘어섭니다. 이 말은 정의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세상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은 많지만 현실은 각박해지는 경우가 그런 예지요.

 독서에서 아합왕은 나봇이 가진 포도밭을 빼앗습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그의 아내가 도와줬기 때문인데요. 여기서 살필 사항은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소유의 땅을 가져야 하고요. 그 땅을 팔아치운다는 뜻은 자기 본 모습을 부인한다는 것과 같다는 뜻이었는데요. 그래서 행복선언에도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단순히 부동산 개념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게다가 남의 것을 빼앗을 권리가 없는데, 이제벨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남용하여 탐욕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이런 사건은 가난한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시는 하느님이 예언자를 통해 이뤄지게 됩니다. 여기에 신약의 예수님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어라 는 말씀이 마치 무력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유념할 사항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완전하게 하자는 것이지, 응징하고 파괴하자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의는 사랑에 뿌리를 박고 있어야 합니다. 정의란 그에게 속한 것을 마땅히 줘야 하고요. 빚진 것이 있으면 돌려주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정의와 사랑이 연결되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뺨을 맞는 이야기나 속옷 이야기는 정의는 사랑에 뿌리박고 있어야 한다는 정신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 의도입니다.

 요즘 세상이 심판하고, 내가 생각하는 데로 되어야 속 시원하다고 말하는 세상이지만 우리 안에는 자비를 통해서 본 모습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응징하고 복수하고, 심판한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꽁해 있거나 다른 곳에서 독초처럼 다시 피워오릅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며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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