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2026. 5. 31. 오후 10: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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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사람은 언어를 통해 표현합니다. 언어로 표현한다는 뜻은 자기가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을 했다는 뜻이 되겠지요. 하지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을 만났을 때 그땐 어떻게 되나요? 경이로움을 만났을 때,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 내가 가진 단어와 언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그땐 어떻게 되나요?

 비트겐슈타인 같은 언어 철학자는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시도를 하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보지요. ‘성당에서 낙성대역을 가려면 인헌시장을 지나 좌회전 하면 나옵니다라고 말하면 다들 납득을 합니다. 자연과학적인 표현이니까요. 하지만 죽은 자식이 문득문득 생각날 때면 가슴이 미어져 라거나 여러분의 영혼에는 너무 많은 욕망이 들어 있습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떠시나요? 이것은 종교적 감성의 발언이지요. ‘가슴이 미어진다는 뜻은 대체 어떤 뜻일까요? 보이지도 않는 욕망이란 게 과연 실제 하나요?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여태껏 해왔던 고마워, 사랑해, 미안해등의 일상적인 말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이런 말은 습관처럼 내뱉거나, 자신의 맨 얼굴을 보지 못하면서 남들을 의식하며 쓰기 때문이라는데요. 그는 우리 밑에 깔린 생각없이 하는 습관, 허영, 기만을 찢어버리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요? 가령 복음에 나온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셨다 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인간적으로는 비정하게 보입니다. 보내진 아들의 최후를 이미 알기 때문이죠. 아들을 사지(死地)로 몬다? 하지만 이 안에는 사람을 살리려는, 구원의 의도가 있지요. 죄를 짓는 이들을 책임지려는 사랑을요.  

오늘은 삼위일체대축일입니다. 하느님인 말씀이 예수님과 같으시고, 이것이 성령의 활동과 한몸이시며, 또 각각으로 활동하신다는 교리가 사람의 머리로 당최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로써 표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범위를 넘으니까요.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습니다. 그분을 알고, 더 사랑하기 위해서죠. 우린 안 보이는 분의 가르침을 들으며, 자신의 현 실태를 인정하면서,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차원을 넘는 그분과의 합일을 빌기 위해 여기 와 있습니다. 나는 내가 만나는 것을 얼마나 신비롭고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그분이 보여주신 것이 바로 그러한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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