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2026. 6. 6. 오후 2: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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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사람은 늘 무언가를 찾아 헤매며 다닙니다. 이번 예비자 중에 연세가 70세 가까운 남성분과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떤 계기로 여기에 오시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약간 허공을 응시하다가 마음이 허해서요라고 답합니다. 짧은 말마디였지만 그분의 생애는 잘 모르지만 스쳐가는 것을 느낄 수는 있었습니다. ‘살면서 만나야 할 것을 만나고 있구나~’ 라고요. 사실 인생에서 다가오는 허()함의 정체를 만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인데요.

 유스티노 성인은 당시 철학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랬던 그가 그리스도교로 옵니다. 여기서 살펴보지요. 철학은 사람이 생각하고, 바라보고, 깊어지게 하는 고도의 학문입니다. 헌데 어떤 한계가 있을까요? 그것이 뭐길래 유스티노가 철학에서 머물지 않고 건너온 것일까요? 철학은 일단 사변적인 성격탓에 현실과 동떨어지는 문제가 있고요. 각각의 진리를 그럴 듯하게 담아내지만 참된 진리를 온전히 담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에 과학이나 수학처럼 증명이 불가능한 것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처럼 어떤 사적인 견해에 머물지 않고 더 나은 가치를 찾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실천해내려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이지요.

 복음의 비유에서 소작인들은 하느님의 것을 빼앗으려 달려들지만 주인은 내 아들이야 존중해주겠지 합니다. 어쩌면 너무 순진한 발상으로 보입니다. 결국 그 아들도 죽였지 않습니까? 그럴 것 뻔히 알면서 보내는 아버지가 이해가지 않을 수 있지만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낫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고린 1,25)”를 되새기면 악랄함을 가지고 덤벼드는 사람들의 시도가 얼마나 같잖지 않은가?를 보게 됩니다. 예상치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들의 시도를 알기 때문이지요. 그 욕심들이 결국 하느님의 사랑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님을 그들 스스로 결국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성심성월을 시작하며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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