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성모신심 미사

2026. 6. 6. 오후 2: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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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성모신심 미사

 크리스찬은 보편적인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가치의 기준을 보편성 catholic으로 바라봅니다. 보편적이라는 뜻은 어느 누구에게 특정적이지 않은 두루두루가 이해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면서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다들 이해한다는 뜻도 됩니다. 그런데 요즘 시대는 개별적인 진리를 내세웁니다. 이른바 네 말이 옳은 것을 알겠는데 내 말도 옳지 않니?’ 라며 따지기 시작합니다. 뭔가를 지켜내기보다 상대의 주장을 거스르며 시작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 안에는 반발심리가 있음도 보게 됩니다. 인간의 이성이 깨이며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의 것을 제대로 들여다보기보다 상대의 주장을 무시하며 까내리며 시작하는 습성은 이 시대의 혼란함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하려는 일이 과연 가슴이 시켜서 하는 일일까?’를 따져봐야 하겠지요. 인간적으로 지고싶지 않고, 나의 잘남을 드러내고픈 마음은 알겠지만 그로인해 벌어지는 일을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는가?를 따져봐야 하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목소리를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람은 있던 고장을 떠나라 하고요. 요셉을 비롯한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은 이집트로 가라합니다. 당시 뉴스도 인터넷도 없던 시대에 소문도 나지 않던 때에 뜬금없는 소리에 자기 인생을 걸며 결단을 내린 이유가 뭘까요? 우린 잘 모릅니다. 여기에 우린 그들이 아니기에 모른다고 답할 수 만도 없습니다. 과학은 과정을 알려주지만 미래의 방향은 알려주지 못합니다. 나는 그런 목소리를 들을 자세가 되어 있는지를 물어야 하는데요. 중요한 것은 그들은 들을 줄 알았기에 흉을 피하고 복을 얻었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66일 현충일입니다. 우린 일제 강점기도, 6.25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기에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본당에는 학도병으로 복무하신 분도 있습니다만, 오늘같은 날은 그분에게 있어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묵직함이 있으실텐데요. 그날을 사셨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당시 분들의 희생으로, 2살 이하의 어린이들이 예수님을 대신해 희생하면서 우리가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면 그분들의 삶은 헛되지 않았는데요. 감사하며 참다운 목소리에 응답하면서 우리도 이타적인 사랑을 해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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