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가끔 신부님들과 생활나눔을 하다보면 이런 말씀들이 나옵니다. ‘나 욕 먹는 것은 두렵지 않은데 일은 제대로 해야죠.’ 이 말씀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신부라서 감히 신자들이 하지 못하는 걸 대신 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막상 또 하자면 신자들 사이에 반대를 받는 상황에 놓이곤 하는 때가 있는데요. 교우들을 대신해 하지만 정작 그 상황에 불편해 하는 문제가 빚어지기 때문이지요.
2014년 8월 124위 시복식을 통해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복자 윤지충은 사실 심사로 추대받을 때부터 엄청난 반대와 스캔들이 벌어졌었습니다. 신자들 사이에서도 말이죠. 그의 문제는 ‘조상의 신주를 태웠기 때문’입니다. 당시엔 조상의 제사를 효(孝)의 관점에서 보기보다 외국인 선교사들의 시각에는 미신행위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신앙에 반(反)하는 행동이라 여긴 초창기 한국교회의 단면이었습니다. 그는 조상에 대한 예의와 하느님 신앙과 부딛힌 문제에서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는데요. 그래서 오늘날에도 설왕설래가 있습니다.
독서의 율법학자 엘아자르는 이교도 제사에 참여하면서 여기에 가까운 이들이 “먹는 체만 하여라” 며 종용합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전능하신 분의 손길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 말합니다. 얄팍하지 않은 강직한 대처로 원성을 사는데요. 어떠하십니까?
여기서 묻게 됩니다. ‘참된 삶을 위해 난 어디까지 하고 있나?’ 를요. 이 질문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듭니다. 당장의 편안함보다 그 이상을 택하는 지를 물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