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티아 사도 축일
마티아 사도는 유다의 배반 후, 결원처리된 자리에 마치 ‘추가 합격자’처럼 선발됩니다. 그에게는 기쁨이겠지만 마티아 본인과 나머지 11명의 사도들에게 있어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됩니다. 왜냐하면 유다가 배반을 하고 자결하며 자기 인생을 그렇게 마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때 동료였던 이들이 함께 했던 시절을 떠올려본다면 그리 개운하진 않았을텐데요. 여기에 베드로는 120명 가량의 무리 앞에서 시편의 예언을 되내입니다. 69편과 109편지요. 물론 내용 자체가 바로 유다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허나 베드로는 왜 그렇게 연결하고 있을까요?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구약의 말씀이 그저 옛 문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움직임 속에서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주장하려 했고요. 임금인 다윗은 하느님과의 계약으로 시작했고요.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에게서 나오는 분이며 예수님은 다윗과 연결되면서 더 크신 임금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다윗이 괜한 미움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도 고난 속에서 유다의 배반이 오히려 구원사업을 일으키고 있음을 말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유다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 죄와 잘못은 오로지 자신의 탐욕과 이기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투표를 통한 선택이 그저 다수결이 아닌,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선포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복음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주님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성질내고, 칭얼거리고, 대체 이해 불가하다면서요. 그러나 ‘열매’라는 것이 맺어지려면 나름의 기간이 필요하고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단박에 이뤄지진 않습니다. 유다의 편견과 오해, 자기 욕심이 주님을 거스른 것을 떠올려 보며, 또한 나 자신의 인생에서 괜한 아집과 포기, 기대에 어긋난다면서 관두고 떠났던 사례에서 나의 선택이 좀더 신중해지길 빌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