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금요일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라고 말씀합니다. 친구는 사전적인 의미로 ‘가깝고 오래 사귄 사람’을 뜻한답니다. 오래 사귀고 가깝다면 당연히 마음이 쓰일 것이고요. 애정도 갈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까지 해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줄 것인가요? 잠시 다른 곳에서 보조를 받아보겠습니다.
‘아함경’이란 B.C. 5-6세기 경 산스크리트어로 된 초기 불교 경전이 있습니다. 여기서 누가 어질고 착한 사람인가? 란 질문에서 친구의 삶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① 그릇됨을 멈추게 하는 사람이니, 마음이 바르고, 어질어서 남의 그릇됨을 분별하고 그치게 한다. ② 자비로운 사람이니 남의 이익을 보면 기뻐하고, 남의 잘못을 보면 근심하고, 남의 덕을 칭찬할 줄 알고, 남의 악한 행위를 보면서 능히 자신의 악을 구제한다 ③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는 이이니, 남의 게으름을 방관하지 않고 남의 재산에 해를 끼치지 않고 남으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지 않게 하며, 조용히 훈계한다 ④ 이익되는 일과 행동을 함께 하는 이이니, 자신의 몸과 재산을 아끼지 않고 구제하여 깨닫기를 잊지 않는다.
여기에 주님은 길게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주님의 말씀에도 엿볼 수 있는 게 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란 구절을 음미하면 뭐가 느껴지지십니까? 하나라도 알려주고, 그걸 통해 기뻐하길 바라는 마음이 보이십니까? 그러면서 이렇게 마무리 지으시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사랑을 가진 이는 뭘 해야 할까요? 앞서 말씀드린데로 잘하는 것은 칭찬하고, 그릇된 것에는 멈추도록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 친구가 안타깝게도 ‘들을 귀가 없다’면 고쳐보겠다고 애쓰더라도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서도 안되겠지요.
오늘은 어버이 날입니다. 나도 이제 누군가의 부모가 되었지만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모님이 계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육신의 부모님, 영적인 부모님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