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간 월요일
세상을 살면서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합니다. ‘모든 사람이 올바른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는 사실입니다. 참된 진리나 선한 것을 추구하기보다 악한 것, B급정서, 소위 병맛(병신같은 맛의 약어)이라 불리는 자기 취향에 머무는 것을 보곤 합니다. 그것의 질 떨어지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남들이 다 좋아라 하지 않는 것도 압니다. 본인도 그 사실을 압니다. 그러면서 그걸 기어이 합니다. 이것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요?
얼마 전부터 대두되는 문제가 ‘나르시즘’입니다. 자기 중심적 성격을 가진 이로 이것을 구분하자면 외형적 나르시즘과 내면적 나르시즘으로 나뉜답니다. 일반적이고 외형적 나르시즘은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공감능력이 떨어지고요. 남을 무시하는 경향’ 이라면 내면적 나르시즘은 과대망상은 적지만 불안정한 자존감으로 불안해하고 자신의 실수는 인정하지 않으며 남탓으로 일관하면서 애정에 대한 욕구는 목말라 하는 스타일로 은근하게 ‘나는 달라’ 라며 알아주길 바랍니다. 요새 대두되는 것이 후자의 나르시즘인데요. 상대를 지치게 하면서 관계가 힘들어지지요.
오늘 말씀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이런 이들이 있지요. ‘얘는 내가 무시해도 되겠다’ 라며 대하는 이들요. 이럴 때는 말해줘야 합니다. ‘그럼 제가 어떤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설명해주십시오’ 그러면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실체나 실력이 발각될 수 있기 때문이죠. 둘째로 이들은 현실이 두려워 벽을 쌓고 사는 나약한 이들이라 공격성을 띠거나 함부로 대하는 특성이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셋째. 분명하게 이것과 저것의 구분적인 설명을 해서 그들의 망상의 현실을 알려줘야 합니다. 괜히 그들이 스스로 변화되길 바라면서 ‘달라지겠지..’ 하는 자세는 위험합니다. 우리 자신의 일관성이 그들 스스로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기 6장에는 예리소성을 함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6일동안 매일 한 바퀴씩 돌고, 7일째 되는 날에 일곱바퀴를 돌았는데 성이 무너졌다’ 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요. 허나 신앙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일관성입니다. 같은 것을 반복하며 나 자신을 단단히 하고, 상대의 허술함과 논리 없음을 식별하는 것은 인간관계 안에도 적용됩니다. 믿음을 이같이 임할 때, 승리한다는 교훈을 얻으며 자기애성 문제자들과 무논리의 이들을 냉철하고 지혜롭게 처신할 수 있는데요. 그러니 우리가 하는 일에 더 떳떳함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럼 반대자들은 그들의 허술함에 무너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