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화요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서구의 사상은 분명하게 잡아주는 듯 한데, 동양사상은 왠지 불분명한 것 같다고요. 하지만 최근에는 서양사상도 불분명함을 인정하는 문헌들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느님, 하늘의 뜻에 관한 모호한 사상이 무 자르듯 분리되지 않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예를 들어 바오로가 복음을 전하다가 군중이 몰려와 돌을 던져 죽은 줄 알 정도로 쓰러져 “도시 밖으로 끌어다가 버렸다” 고 나옵니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크게 개의치 않는 듯 다른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합니다.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이게 말이 안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불가능해 보이는 데, 정말 불가능하기만 한 걸까요?
1 880년 경에 태어나 26살 나이로 삶을 살다가신 프랑스 출신의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이 있습니다. 2016년에 시성되셨지요. 가르멜 수녀님은 그녀는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란 완전히 자신을 잊은 사람입니다. 누군가 내 행복의 비결을 묻는다면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교만을 굶겨 죽이려 합니다. 교만이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우리에게 다른 걸 모두 지워 버릴 만큼 강력한 것이어야 합니다. 참된 것을 지향하기 위해 자신의 처지만 바라보지 않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자세는 하느님의 의도, 구원사업과 나 자신의 행동을 분리시키지 않는 생각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우린 주변을 너무 의식하고요. 두려워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러다보니 할 수 있는 것도 잘 못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지만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이 없다.” 는 말씀이 와닿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과 일치된 삶이 필요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