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일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제가 며칠 전 연예인을 봤는데요? 주변이 환해지는 게 무슨 아우라를 느꼈어요’ 이걸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결혼할 상대를 만날 때도 그런 반응을 보이곤 하지요. ‘저 사람 하나만 보였다’ 고요. 그러면서 ‘절대 놓치면 안되겠다고’ 고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성북구에 있는 봉쇄수녀원인 갈멜 수녀원에서 수녀님들 25분을 뵌 적이 있습니다. 거긴 할머니 수녀님부터 젊은 수녀님까지 계셨는데 할머니 수녀님 얼굴에 빛이 빛나는 것처럼 보인 것을 보고서 ‘아.. 이게 기도하는 사람은 뭐가 다른 긴 하는구나’ 를 느낀 적이 있는데요. 이처럼 현실을 살면서 가끔은 초월적인 뭔가를 만나곤 합니다. 사실 종교가 그런 곳을 만나는 곳이니까요. 현상을 넘는 그 무엇을 말이죠.
앞서 연예인을 만난 예화나 봉쇄 수녀님의 예화처럼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벌어지는 현상이 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알지 못하거나 보지 못한 것을 말할 때, 확실히 인간의 이성과 훌륭한 교육을 받아왔던 현실과 반대된다’ 는 점입니다. 현실의 물리적인 세계에서 ‘주변이 환해졌다’ 따위의 이야기가 쉽게 믿기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치 모세가 하느님을 처음 만났을 때, 불타는 떨기나무를 봤다거나, 성모님이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는 성경 내용을 현실 사람들이 무시하는 이유는 그동안 배운 교육과 인간의 생각의 범위에서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끔 치유가 불가능한 환자가 깨어나기도 하고요. 저 같은 경우 15년 전. 의식을 잃고 계단에서 굴러 제 뇌의 1/4이 피로 범벅이 되었지만, 손발의 움직임이나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던 것을 당시 담당의사가 말하길 ‘신부님이니까 이런 모양이네요.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됩니다’ 라는 소견을 들으며 분명 현실을 넘어선 뭔가 있음을 봅니다.
여기에 오늘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예수님을 못 알아봤다는 점입니다. 겨우 며칠 되었다고 말이죠. 그러다 빵을 떼실 때에야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고요. 또 다시 그분은 사라지십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각에 다른 제자들도 주님을 보았다는, 시간을 초월한 듯한 장면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복음의 내용은 굉장히 주관적인 체험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 차원을 넘어서는 초월의 경지를 학문적인 반성, 그러니까 여기에 대한 비판과 검토와 점검을 통해 정리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전 세계에 퍼지고요. 우리도 읽게 되었는데요. 물론 인간의 언어는 한계를 지닙니다. 가진 표현의 한계, 단어 숫자의 한계, 이를 이해하는 이들의 이해의 한계도 포함됩니다. 유한한 인간이 자신을 넘어서는 뭔가를 이해한다는 점이 오히려 한계일지 모릅니다. 그것이 왜 그러한 지 모르는 것은 자기 기준을 넘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만나고 싶어합니다. 여기에 두 부류가 있는데요. 하나는 그들의 삶, 그들의 생계 안에서 신을 자꾸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마치 애인사이끼리 ‘자기 나 사랑해?’ 라고 묻듯이 이미 곁에 있어주는데도, 자꾸 확인하려는 관계가 있고요. 또 하나는 가난하고 외로운 삶에서 신성을 인정하기에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사는 이들입니다. 여기에 오늘 제자들은 두번째 부분을 보게 됩니다. 주님과 만나고 사라지셨을 때, 이렇게 외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그 타오르는 마음이 그들 스스로도 다 이해되는 측면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당신과 함께 할 때 기쁨과 충만함을 느꼈지만 설명을 나열하진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없었던 일이라 치부할 수도 없는데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평범하고, 그저 그렇고, 욕심 많은 인간들이 사는 이 세상에서 결국 무엇을 만나고 싶습니까? 지금의 나보다 나은 뭔가를 만나야 이 답답함에서 해소되지 않겠습니까? 우린 평범한 일상을 살긴 하지만 그 너머의 차원을 만나고 그것이 있음을 인정할 때, 나의 생활이 그저 그렇게만 흐르지 않는데요. 예수님이 일부러 나타나주신 것도 그렇습니다. 그 차원이 있음을 인정하고 나 또한 상대방에게 그런 좋은 것을 제시하고 나눠주는 삶이 되라는 말씀 아닐까요? 그럴 때 우리의 삶은 이보다 밝아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