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간 화요일

2026. 4. 14. 오후 12: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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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주간 화요일

 오늘 니코데모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어제 복음과 이어지는 이 대화의 시작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그럼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우린 물리적으로 안 보이고, 안 들리는 차원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나름 설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그러면서 신학이 시작되었고요. 신학이 발전되기 위해 세상에서 쓰이는 여러 방법을 동원하고 인용하려 애썼습니다. 그래서 교부신학은 플라톤 철학에서, 스콜라 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식에서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주님 전, 320년 경까지 살다간 아리스토텔레스는 메타피직이라 하여 실제 벌어지는 자연현상 그 너머의 차원의 근원에 대해 다룹니다. 그걸 형이상학이라 합니다. 존재의 근본, 체계의 탐구입니다. 이게 있어야 개별 현상에 대해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 이전인 플라톤의 의해 이미 시작되었고요. ‘현실 너머의 절대적인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염원에서 말이죠 아마 니코데모는 율법은 알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못 알아듣지요. 물론 예수님은 철학자도 형이상학자도 아니셨지만 그나마 우리가 알아들으려면 뭔가 도구가 필요하긴 합니다

 매일미사 8페이지를 보시면 니케아 신경이 나옵니다.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부분은 예수그리스도와 하느님과 동일 본질이시며 결국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에서 인간과 하느님이 참된 조화를 얻을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 는 말씀처럼 인간의 활동에서 신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나도 그리 살아갈 때 일치된 삶을 살 수 있는데요. 우린 그 너머의 것을 얻기 위해 현실을 먼저 주님의 시각에서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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