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수요일
왜 똑똑한 사람일수록 엉뚱하고 나쁜 선택을 하는 것일까요? 잘 모르는 이들이 이런 오해를 하곤 합니다. ‘유다가 배반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아닙니까? 즉 예수님의 구원사업을 도왔기 때문에 그도 천국을 가야하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요. 듣기엔 그럴 듯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이 말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뭘까요? ‘유다가 스승을 자발적으로 팔아넘긴 이유가 뭘까?’ 라는 점입니다. 우리야 성경의 결말까지 다 알기에 앞의 것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겠으나 실제로 그의 입장에 놓인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우리가 결말을 다 알고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제자 사이에서 총무 역할을 하던 그는 나름 영특했을 것이고요. 합리적인 판단을 추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배신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일단 원치않는 스승의 계획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자기가 살기 위해 제자가 되는 것에 동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승의 계획은 자기의 예상과 달랐습니다. 안 그래도 예수님의 설교와 기적 때문에 율법학자들에 의해 반발과 태클이 들어오던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자신의 입지가 난처해지고요. 같이 연루될 위험에 놓입니다. 여기서 유다가 살 방법은 뭘까요? 스승을 밀고하고 자신은 거기서 빠져나오는 방법입니다. 요즘도 그렇지 않습니까? 자신의 잘못을 희석시키기 위해 남의 잘못을 부각시키고, 자기는 빠지는 방법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요.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 하는 존재’ 라고요. 모두들 자신이 억울하다고 말하니까요.
우리가 처음부터 이렇게 교육받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똑똑할수록 나쁜 선택을 하곤 합니다. 자기가 피해받지 않으려, 손해보지 않으려고요. 하지만 주님의 방식은 마치 무모해보입니다. 큰 것을 얻으려면 많이 걸어야 하는 도박의 방식처럼 큰 배팅을 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거신 ‘희생제사’를 보며 나는 어떤 사랑을 하는 지 봐야 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에서 그런 것을 보죠. 좋은 학교, 번듯한 직장에 갔지만, 부모에게 소홀하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 살피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어디서 왔는지 안 보는 거죠. 똑똑한 것은 아닐 겁니다. 헛똑똑이에 가깝지요. 우리도 유다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만 연연하는 선택을 하는가? 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