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
잠시 예전 배웠던 교리를 복습하겠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우리가 벌였던 죄를 용서하시고 화해하시기 위하여, 직접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당신 몸을 희생제사의 제물로 바쳐 그 몸값으로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이 구원을 얻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은 마태오 복음 1장 1절은 이랬지요.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 라는 뜻의 ‘예수’와, ‘구원자’ 라는 뜻의 ‘그리스도’가 결합된, 그분의 이름에서 어떤 분인지를 바로 알아들을 수 있고요. 유대인이었던 마태오는 이분이 자기네가 숭앙(崇仰)하는 다윗과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증언합니다. 오실 분이 오셨다는 것이죠.
이미 아담과 하와 시절부터 수 많은 인물들이 벌였던 나름의 문제가 있었구요. 그것을 해결하시며 구원사업은 이어나가십니다. 이제 예전과 다른 시대를 사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닥쳐진 문제를 다시금 봐야합니다. 우리의 욕심과 소비로 전쟁과 환경파괴와 질병이 생겼고요. 책임자들은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면서 무고한 희생자들이 생겨나는 때에 여러분은 무엇이 보이십니까? 우리의 가볍고, 얕고, 약아빠진 태도를 참으로 안타까워 해야 할 것인데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예언을 하나하나 다 이루시며, 약속에 충실한 삶을 사셨다는 것을 이미 읽고, 보고, 배웠다면 그 배움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나뭇가지를 흔들어대며 환호하던 이들이, 자신들의 바람과 어긋난다고 갑자기 돌변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복음을 들으며 순간 우리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라고 항변할 게 아니라, 주님을 알면서도 여전히 예전 저질렀던 잘못에 빠지고 마는 우리의 나약함을 인정하며 ‘네,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침묵속에서 인내하신 주님의 얼굴을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내가 저지른 잘못과 그 사실을 알면서도 거기서 머물려고만 들었던, 나 자신의 나약함을 보면서 십자가의 주님을 봐야 하겠습니다. 나를 내세우기보다 다른 이를 위해 죽을 줄 알고, 양보할 줄 아는, 희생을 배우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