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간 목요일
오늘날의 사회가 뻑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아무래도 서로를 못 믿는 신뢰없음과 신용없는 사회에서 기인한 듯 보이는데요. 마치 부장이 사원을못 믿고, 선생이 학생을, 학생이 선생을, 심지어 부부와 가족사이에 도 신뢰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갖다줘도 의심밖에 들 것이 없을 겁니다. 사실 유대인은 우리가 읽는 신약과 달리 구약의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압니다. 분명 그 안에는 이사야 등의 예언자의 ‘고난받는 주님의 종’ 의 이야기나 구세주는 핍박받고 고난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고요. 12소 예언서에도 구세주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다윗의 후손에서 나와 베들레헴에서 출생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그들이 읽는 경전인 타나크는 그런 부분을 교묘하게 빼놓거나 해석을 달리하기에 설사 그 부분이 있어도 읽지 않는답니다. 당연히 평범한 유대인은 더 모르겠지요.
요새 이스라엘 인근 중동 지역의 전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온 것이기에 새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들이 진정 선택받은 민족이라면 이런 방법으로 진행하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옳아 보일까요? 하느님은 계약을 맺어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지만 그걸 바라보는 시선은 못내 의심만 가득한 것을 봅니다.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그 당시에도 오죽 답답하셨으면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요한 14,11)” 하시지만 요지부동이었지요.
여기에 우리 마음도 보게 됩니다. 내 마음은 신뢰하는 면이 더 열려있을까요? 아니면 그냥 의심많은 면이 더 많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