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월요일. 열왕하 5,1-15ㄷ; 루카 4,24-30
사람들은 나름의 기대를 갖습니다. 예를 들어 ‘공무원은 친절해야 해’ ‘간호사는 세심하게 살펴야 해’ ‘사회복지사는 따스하게 봉사해야 해’ 그른 말은 아닙니다. 다들 그런 친절, 봉사를 받길 원하지요. 하지만 오늘 말씀에 나오는 엘리사 예언자, 예수님 말씀은 사뭇 불친절해보이고, 차가운 인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장수 나아만이 화를 냈듯이요. 회당에 모인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듯이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대응했다’ 는 점입니다. 사람은 자기 눈높이와 기대심에서 사람을 평가하려 듭니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눈높이가 과연 제대로 된 것인가? 란 질문입니다.
예언자는 자신의 힘으로 병을 고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는 만큼 열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큰 일을 이루고 나면 자신에게 공을 돌리지 않고, 하느님께 공을 돌리고 감사를 드립니다. 이건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당신께서 주시지 않으시면(요한3,27, 6,44)” 이란 표현이 곳곳에서 나옵니다. 이는 힘의 근원이 ‘주님’ 이심을 밑에 깔고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들의 불친절함은 당연했을지 모릅니다. ‘믿지 않은 이에게, 즉 출발이 다른 이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교회에 모여 와 있지만 실제로 신앙보다는 다른 것, 외부적인 것에 관심이 더 있는 이는 당연히 대화가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정도 맞춰는 주겠지만 심도있는 대화는 불가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아만은 부하의 권유에 따라 한 번 시도를 하며 자신을 낮췄기에 병이 나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죽이고, 맡겨 보는 것. 이것이 이곳의 첫 시작입니다. 우리도 과연 얼마나 그러한 지 물어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