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간 금요일

2026. 2. 27. 오후 9: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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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1주간 금요일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시초는 태조 이성계와 그와 함께한 무학대사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답니다. 나라를 세우고 안정기에 들자, 이성계가 농담을 하자고 건의합니다. 먼저 그가 말합니다. ‘대사님은 돼지 같아 보입니다그러자 무학대사는 전하는 부처님 같이 보입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성계는 아니 농담을 하자니까요?’ 하자, 대사는 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이지요하고 응했다는데요.

 이것이 단순히 우스개처럼 들리지 않는 것은 사람은 각자의 주관(主觀)이 있습니다. 각자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봅니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이 뭘 하기에 이쁘고 미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모습에 내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내게 있기에, 상대방의 의도치 않은 행동이지만 나는 그걸 알아차립니다. 나의 모습이 다 괜찮지 않기에, 비슷한 면이 그에게서 발견되면 나는 그게 못마땅합니다. 난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밉습니다. 처음엔 상대방이 미운 줄 알았는데, 실은 내 모습에 투영된 것이 그에게서 나오기에 나는 괴로운 것입니다. 내가 가진 걸 숨기느라 살았는데, 그가 의도치 않게 보여줬기에 나는 그가 미운 것입니다. 결국 나에게 그런 면이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됐으니까요. 그런 내가 용납되지 않아 버거웠는데 말이죠.

 오늘 말씀은 단순히 상대방을 비방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왜 못 견뎌하는가?’ 가 주안점입니다. 여기에 독서는 말합니다. 주님은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주님의 사랑은 만물을 사랑으로 대하는 사랑인데, 나는 나만 생각하니 하느님의 사랑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내게 해주시는 것도 안 보이고, 남은 잘되는 것 같은데, 나는 항상 이 모양이라 여기니까요. 그래서 불공평하게 보였던 것이죠.

 앞서 농담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평상시 나는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란 질문이 들어있기 때문인데요. 나의 상()에 가로막혀 일부러 상대를 미워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결국 내 자신이 못마땅하게 보였던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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