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일

2026. 2. 14. 오후 3: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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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6주일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성인은 쉬운 길을 쉽게 가고, 평범한 사람은 쉬운 길을 어렵게 간다다들 압니다. 어떤 것이 착한 행동인지를요. 하지만 사람들이 반대로 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년 25년도에 시성되신 성인이 있습니다. 카를로 아쿠티스입니다. 91년생으로 태어나 백혈병으로 2006년에 세상을 떠나셨지요. 고작 15살입니다. SNS 댓글에는 '우리처럼 청바지를 입은 성인 ' 이라며 친숙함을 표현하는데요. 우리나라도 14살의 유대철 베드로 성인미 있지요. 이분은 순교하셨다지만 최근까지 살다가 병으로가신 분을 왜 성인품에 올렸을까요? 이분 행동을 목록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기가 죽은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밥 먹기, 왕따당한 친구에게 말 걸기, 놀이터에서 장난감을 빼앗겨도 화내지 않기, 규칙을 어기는 친구에게는 화내기, 쓰레기 줍기, 버려진 동물 집으로 데려오기, 거리의 청소부에게 인사하며 안부 물어주기, 할머니에게 부탁해 후식까지 챙겨 노숙자에게 나르기, 신발을 한 켤레 더 사주겠다는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며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 달라 부탁하기, 사춘기 시절 예쁜 여학생에게 친구들이 휘파람을 불자 소피아가 개야? 왜 휘파람을 부니?”라고 화내기.’ 이게 어렵나요?

 평범하게 살다 간 이가 성인품에 오르려면 기적이 필요합니다. 처음 복자품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 사람이 치유되었기 때문입니다. 2009년 선천적으로 췌장이 좋지 않아 시한부였던 브라질의 한 소년이 있었는데요. 이 소년의 어머니가 아쿠티스에게 아이가 적어도 맛있는 것이라도 토하지 않고, 먹고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아이가 음식을 깔끔히 먹고 췌장이 완치 판정을 받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이로써 2020년 복자로 시복되었고요. 성인품에 오를 때도 코스타리카 여성이 카를로의 묘를 참배해 기도하자, 식물인간 상태였던 그 딸이 자가호흡을 시작하고 의식을 회복했답니다. 원래 프란치스코 교황님 때 시성되려 했으나 교황님이 선종하시는 바람에 레오14세 교황님에 의해 2597일 시성되셨지요. 이분의 유명한 어록이 있답니다. 다니던 학교에서 몇 벌이 없는 그의 옷을 가지고 친구들이 촌스럽다며 놀리자, 그는 정색하고 말했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유하게 태어나. 명품이 뭐가 좋아? 모두 똑같이 생겼잖아. 남을 모방만 하다가 세상을 떠나면 좋겠니?” 틀린 말은 아니잖습니까? 여러분은 쉬운 길을 쉽게 가십니까?

 오늘 1독서는 말씀합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있다.” 가능하답니다. 예수님도 가장 기본적인 율법을 말씀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왜 반대로 갈까요? 여기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먼저 파악해야 이해가 됩니다.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 41항에 보면 우리는 하느님의 법의 모든 규범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인간 권리가 보장된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정말 그렇지요. 인간의 이성이 하느님의 법보다 낫다고 여기며 세상의 가르침을 따르는 데 열중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다만 기술적인 면만 가르치려 들지요. 여기에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자유의지론을 소개합니다. 자유의지는 외부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는 능력을 말합니다.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여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악을 실천할 자유는 주어졌으나 인간은 도덕, 윤리를 따르기보다 욕구, 욕망이 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양심은 있지만 평소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다 보면 충동적으로 흐르게 되고요. 결국 죄로 빠지게 됩니다. 로마서 7,18-25절 말씀에도 바오로가 고백합니다. 사실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으셔야지요. 그분은 사람이 두려워하는 막강한 죽음도 이기는 분이시잖습니까?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쉬운 길을 쉽게 가셔야겠습니다. 우리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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