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일 가해.
분명 한국말로 되어 있는데 알아듣기 힘든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여러 말씀 중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알려진 말씀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산상수훈, 산상설교의 말씀입니다. 강론 시간이 강의 시간은 아닙니다만, 듣긴 했어도 도통 모르실 분들을 위해 설명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필기하실 분들은 하셔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에서 나온 산은 앞산, 뒷산 어디일까요? 원문에는 정관사가 붙어서 '그 산' 이라고 나옵니다. 나중에 '그 산'은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제자들과 모인 산이름도 그랬습니다. 여기에 성경 학자들은 아마도 행복선언을 한 그 산일 것이라 여깁니다.
“행복하여라” 여기서의 행복은 그저 등 따습고, 배부른 행복이 아닙니다. 현재의 만족만이 아닌, 하느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행복은 종말론적인 행복입니다. 현재의 고통을 겪는 이들과, 말씀을 들으며 위안을 얻고 주님과 하나가 되려는, 모든 이가 함께하는 행복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여기의 가난함이란 겸허한 자세를 가진 이들을 말합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게 낮추며, 모든 것을 하느님 판단에 맡기며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은 가까이 계셔주시지요. “슬퍼하는 사람”에서 슬픔은 어떤 것도 그를 회복시켜 주기 어려운 지경에 놓인 사람을 뜻합니다. 이런 때 메시아의 사명은 위로해주는 데 있습니다. 이런 메시아는 슬픈 이에게 천상 약속을 통해 위로를 줄 수 있지요. “온유한 사람들” 이란 폭력을 쓰지 않는 부드러운 사람을 말하며 이런 이들에게 시편 37장 11절. “가난한 이들은 땅을 차지하고 큰 평화를 누리리라”처럼 하느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사람의 인정을 받기보다, 나중 약속의 땅을 받음을 말합니다. 이 땅은 단순한 부동산의 개념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시기 위한 자유로운 공간이 주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빡빡해지면 상대가 들어올 틈이 없고요. 하느님도 여기에 들어올 수 없는데요. 반대로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는 이들은 받을 상을 댕겨서 받는 형국이기에 나중 받을 보상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구절이 있지요. “너희가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고요.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이 의로움은 세상에서는 나약한 사람의 취급을 받을 수 있지만 양심을 지키며 살기에 하느님이 승리하심을 기다리고 고대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로인해 “흡족해질 것이다” 는 뜻은 채워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비로운 사람들”이란 인과응보를 뜻합니다. 자비를 행하는 이에게 자비가 주어지듯, 이로인해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섭리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됨을 말합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란 시편 24장 3절~6절 사이에서 따온 말로 내면의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 뵈옵는, 지복직관의 상을 받음을말합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은 유다인 전통에 화해를 이루는 사람은 이웃과 화해하는 사람을 뜻하고요. 이때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는 말씀은, 자녀는 부모로부터 이름을 받지요? 그래서 불림을 받은 아브람은 나중에 아브라함이 되고요. 시몬은 케파, 반석이라 불리는 베드로가 되었듯이 새로운 이로 거듭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하늘나라의 그들의 것이다” 는 말씀으로 끝나는데요. 이는 앞서 4번째 “의로움에 주린다”는 표현이 여기에 다시 쓰이면서, 앞의 4개 행복선언과 뒤의 4개의 행복선언의 구성이 딱 맞게 이뤄짐을 보여주고요. 앞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받을 상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는 내용으로, 구성상 앞의 것와 뒤의 것이 이어지는 수미쌍관식 구성으로 끝맺습니다. 9번째 행복선언인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라는 부분이 나오지만 앞선 구성과 다르기에 8개만 따서 그동안 진복팔단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이 행복선언은 그저 살기 위해 먹고 마시는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하던 것과 반대되는 것으로, 주님은 우리에게 ‘회심’을 요구하십니다. 이 가르침은 7장까지 이어지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주님의 뜻을 실천하여라” 라며 그저 듣지만 말고 실행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예수님 가르침의 목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저 듣는 데에만 치중하거나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용도로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사실 건강도 그렇지요. 좋은 것을 먹어야 건강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안 좋은 것을 먹으며 식습관이 좋지 않기에 병나거나 현상 유지일 때가 많은 게 사실인데요. 1독서에 나오지요. “주님을 찾아라.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 당신의 날은 지난 과거부터 지금,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은 예전부터 항상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