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일
결혼 생활 30년 된 부부가 있습니다. 때마침 결혼기념일이 다가오자 아내는 내심 기대하면서 마음에 간직했던 요구사항을 남편에게 말합니다. ‘자기, 내가 오랫동안 가보지 않는 곳에 가고 싶어요’ 이에 남편은 알겠다는 듯 눈을 찡긋거리며, 손을 부드럽게 잡고 데려갑니다. 어디로요? 부엌으로요.... (웃음)
사람은 가끔 현실을 거부하곤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허나 그곳에 있다고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닙니다. 정확하게 표현해 아는 척을 한다는 게 맞을 겁니다. 그래서 학위에 관한 유머가 있지요. 학사- 난 무엇이든 다 안다. 석사 – 내가 모르는 것도 있다. 박사 – 난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교수 – (학생의 질문을 듣고서) 음..모르겠는데? 유머지만 솔직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뭔가를 알고자 합니다. 알고 싶은 욕구는 그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에 내가 남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합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고. 대접받고 싶은 욕구입니다. 그래서 내가 뭔가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포를 가집니다. 내가 뒤처지는 것이 증명될까 봐서죠. 하지만 앞서 유머처럼 우린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거기에서 새로운 출발이 가능한데요.
오늘 세례자 요한도 2번이나 말합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당대 최고의 핫이슈인 사람이 할 법한 말은 아닌데 여러분은 어떻게 들리십니까? 그는 알고 있었던 겁니다. ‘나는 하느님에 대해 잘 모른다’ 점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앞에 서 있긴 합니다만, 신학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고, 서품을 받고, 연차를 거듭하고 여러 본당을 다니긴 하지만, 매번 새롭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런 점을 무능하다고 치부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아는 척’ 하는 것을 교만의 죄로 여깁니다. 여기엔 전제가 깔려 있지요. “하느님 당신은 나를 아십니다” 시편 139편에 나오지요. 나는 모르는 것을 숨기려고 들지만, 어떻게든 아는 체 하여 위기를 모면하고 싶지만 실제로 하느님은 나라는 사람을 아시기에, 그런 가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고맙게도 주님은 여기서 끝나지 않게 하시지요. 그런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세례자 요한에게는 예수님을 만날 기회, 그러면서 세례를 베풀 수 있는 기회였죠. 그러면서 그는 눈이 열립니다. 자신보다 더 큰 존재를 만났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지요.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그렇게만 끝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리지요. 그건 바로 의심도 생깁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은 한쪽만 본 것이었으니까요. 계속 생기는 의심과 의아함을 만나갈 때, 우린 진정한 것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는데요.
우리가 많이 들은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는 말이 있지요. 보통은 성철 스님이 한 말로 알지만, 실은 이 말을 가장 '의미있게' 먼저 한 사람은 송(宋)나라의 청원유신 선사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30년 전에 선(禪)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산이 그저 산으로, 물이 그저 물로 보였을 뿐이었더라. 그런 후에 지식을 직접 얻기 위해 절에 들어와서 보니,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니었더라. 이제 와서 절을 떠날 때가 되니, 예전처럼 산이 다시 산으로, 물이 다시 물로 보이더라.’ 자기가 참선을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저 산은 산으로 물을 물로 봅니다. 하지만 조금씩 배우고 나니, 산이 산(만)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다 나중에 크게 깨우치니 결국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우리 일상 속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땐,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는 순수한 생각을 품습니다. 우정이 더 중요하고 같이 있는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여러 고충을 겪으며 ‘돈 버는 게 제일 중요하다' 고 생각이 바뀝니다. 그러다 다시금 나이가 들고 인생을 관조하고 응시하면서, ‘돈을 버는 것만이 중요한 건 아니구나’ 하고 마음을 고쳐잡는데요. 뭐가 진짜일까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모르는 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 모를 분만도 아닙니다. 알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당신을 열어주십니다. 그랬기에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였고, 우리도 지금 여기에 모여 있잖습니까? 안다, 모른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을 느끼며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과 더불어 이런 사랑을 계속 나누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요? 충만한 삶 되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