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다니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이색적인 풍경, 음식, 휘둥그레지는 여러 상품을 보며 즐거워하지요. 하지만 신앙인은 좀 다릅니다. 밖에서 만나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봅니다. 나이가 들어 건강이 달라지거나, 마음이 예전같지 않게 변하면 그렇지요. 그에 반해 늘 자신을 탐구하고 들여다보는 이들은 먼길을 돌아가는 듯 하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데요.
여기에 유명한 에디트슈타인이란 성녀를 소개해봅니다. 그녀는 1891년에 태어난 유대인이었습니다. 십대 시절 중학교를 자퇴할 만큼 방황했지만 대학에도 갔고요. 역사, 심리학을 공부했지만 역시나 지적인 열망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만난 훗설의 현상학을 통해 불변하는 진리를 찾고자 합니다만 그것도 잠시, 학문적인 방황을 다시 겪습니다. 그러다 가르멜의 성녀 대 데레사 성녀의 자서전을 읽고서 진리 안에서 경계없는 대화가 가능함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신과 인간이 서로 소통하면서 살아있는 인간존재를 비추는 초월적인 빛이요, 인간은 자신의 근원을 인식하면서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인식하는 대상과 일치를 이룸이 가능함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탄성을 지르면서 그리스도교에 입문하였고요. 20세기 현상학의 관점에서 신비주의를 재평가하는 논문을 씁니다. 그러다 더 큰 합일을 위해 수녀원에 입회합니다. 뭔가를 잘하는 사람들은 한 분야에서 멈추지 않고 통합을 할 줄 압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한계를 극복하며 초월적인 분야를 인정하는데요.
오늘 예수님은 요한이 잡혀간 것을 듣고서 이제 때가 되었음을 감지합니다. 그곳은 가파르나움이었습니다. 제자들을 만난 곳, 많은 기적과 이적을 한 곳이지요. 그러면서 당신의 움직임이 곧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열림을 보여주십니다. 자신의 때가 되었음을 아는 것은, 누가 알려주는 게 아닙니다. 저도 첫 부르심을 받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지금이 바로 그때다’ 라는 거였습니다. 이건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독서의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그분과 함께하면서 자신을 증명해보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