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테파노 순교자 축일
세상은 알 수 없는 측면이 작용하곤 합니다. 옳은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재능있는 사람을 찾지 않습니다. 알 수 없는, 이해가 잘 안되는 사람의 측면에서 이런 것이 작용합니다. ‘내 말 잘 들어주는 사람’ , ‘이해 관계가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래야 본인들이 더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의 옳고, 좋고, 사랑스러운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우리 클래스에 들어올 만한 사람인가?’ 가 중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성탄 주간을 맞이하며 기뻐하곤 있지만 어제 요한 복음 1장처럼 “그분께서는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처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패를 가르고, 이간질하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쳐냅니다.
오늘 스테파노 첫 순교자의 삶도 예수님의 삶과 비슷했습니다. 세상은 참된 진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찾지 않습니다. 오직 ‘내 말 잘 들어주는 사람’, ‘내 욕망을 채워줄 만한 부품 같은 사람’을 찾지, 내 삶의 근간을 흔들어 댈 만한 뭔가를 가진 이의 메시지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손으로 하늘을 가려본 들 세상이 자기 것이 될까요?
스테파노의 말에 충만했던 이유는 무엇이고, 복음처럼 억울한 상황일 때 “걱정하지 마라” 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믿었습니다. “아버지의 영이 옳다” 는 것을요. 세상의 시류가 참다운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있는 내가 가치 기준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 더 우선 순위임을요. 그래서 두렵지 않았고, 자신이 있었고, 세상 누구보다 떳떳했고, 누구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것을 갖고 싶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스테파노 성인을 주보 성인으로 모시면서 그의 우직하고, 끈덕진 외침의 자세가 너무나 멋있습니다. 이런 신앙인의 삶을 살아내야 하겠습니다. 더 큰 가지기준을 위해 양보하지 않는 그러한 소신, 소명, 믿음의 자세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