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간 수요일
삶이 지칠 때, 인생이 고달플 때, 남들에게 사정을 말해보지만 위로보다는 타박받는 말을 들을 때, 우리 자신은 위축됩니다. 그러면서 혼자 삭히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곤 합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만나지 않습니까?
오늘 독서 말씀은 남의 나라에 끌려와 귀양살이하는 설움을 나타내는 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이 자신을 선택하셨다며 자부하며 살았었는데 ‘그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 하느님이 우릴 버리셨다는 느낌을 내뱉고 있습니다. 솔직히 누가 고통을 바라겠습니까? 일부러 원한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개인적으로 못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우린 고통을 통해 현실을 개선해 나가는 이들입니다. 실패를 만나며 앞길을 개척해 나간 예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당신은 위로해주십니다. 왜냐하면 이제 믿을 것은 사람이 아니요, 제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라는 구절이 그걸 말해줍니다.
가끔 본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예전 사목회장도 역임한 분에게 본당 신부님이 제안을 건넵니다. ‘예전 사목회도 하셨으니, 우리 본당에 필요한 노인분과에 봉사해주시겠습니까?’ 그러자 헛웃음을 치며 이렇게 답변하더랍니다. ‘예전 회장도 했었는데 분과장을 하다니요?’ 자기 자리가 항상 그 자리인줄 아는 이들, 내려올 줄 모르는 사람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못 알아듣습니다. 허나 겸손한 이에게는 더 많은 가르침과 은총의 선물을 주십니다. 그런 멍에와 짐은 하나의 과정이요, 당장의 불편함일 뿐, 큰 도약의 계기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절제와 불편함을 통해 성장해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