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일 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

2025. 12. 6. 오후 10: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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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2주일 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란 성경 구절이 생각나십니까? 루카복음 10장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나오는 말인데요. 그 시작은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꺼낸 말입니다. 헌데 진짜 이웃이 누군지 몰라서 말한 게 아닙니다. 그 앞에는 이런 말이 붙어있습니다. 그 율법 교사는 자기의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이른바 잘난 체 하려고 했던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도 비슷한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누가 우리의 이웃일까요?’

 먼저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혹시 불편한 내용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생길까 싶어서 교회는 종북 좌파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언급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수 많은 이미 세기와 시대 동안 남을 억압하는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니까요. 교회는 이미 19세기와 20세기를 걸치며 200년간 사회문제에 대해 언급해왔습니다. 그 시작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증기 발전소와 공장이 생겨나면서, 고용주 입장에서 이제 노동이란 것은 해가 진다고 일을 못하게 된 시대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전기를 돌리면 계속 일을 시킬 수 있었기에 당시 인권, 노동시간의 개념이 없던 시절, 어떤 때는 하루 20시간 가까운 노동을 시키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너무 심하게 일을 시키는 현장이 벌어지자 여기에 교회가 첫 목소리를 냈던 것이 그 유명한 레오 13세 교황님의 새로운 사태라는 헌장이고요. 그 이후 예전보다 상황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런 문제가 대두됨을 교회도 알고 있기에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실업, 불완전한 고용, 부당한 임금, 열악한 생활 환경 조건으로 고통받는 수 많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말이지요. 여기에 올해 10월 지금 교황인 레오 교황님이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란 권고문을 내시면서 예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언급하십니다. [사회적 죄가 사회 안에 죄의 구조를 공고하게 만든다고 상기시켜 주십니다. 사회적 죄는 흔히 이기심과 무관심에 불과한 것을 정상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으로 여기는 지배적인 사고방식의 일부입니다. 이로써 사회적 소외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가난한 이들을 무시하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권세 있는 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대중의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조직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 말씀의 포인트가 보이십니까? 이기심과 무관심이 정상적이다! 대중의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의 경제 조직이, 합리적이다! 말도 안되는 이런 시도를 그들은 감행하고, 이에 우리도 따라가려는 현실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우리가 도덕적 영적 존엄성을 다시 회복하, 아니면 진흙탕에 빠져들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멈추어 서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공개적으로든 남몰래든 현재의 분배 방식을 합법화하려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런 날을 기념하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은 어리석거나 순진하게 보이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런 구조적 문제들을 지적하고, 규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낼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일 안하는 사람 있습니까? 게다가 예전과 다르게 투잡, 쓰리잡을 해야 먹고 사는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는 본인의 상황을 눈 감고 있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여기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저마다에게 질문하십니다. “여러분은 누구와 동일시하십니까? 이 질문은 어려운 것이지만 직접적이고 결정적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 특히 약자에 대한 무관심의 장벽을 치려는 유혹을 인식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많은 면에서 성장을 이루었지만, 발전된 우리 사회 안의 가장 힘없고 약한 이들을 동반하고 돌보며 지원하는 데에는 여전히 까막눈입니다. 그러한 약자들의 상황이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우리는 눈길을 돌리고 옆을 스쳐 지나가며 그 상황을 무시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대다수 복지 혜택이 있는 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혜택을 받는 이들은 받지 않아도 되는 이들이 타 가는 것을 보곤 합니다. 여기에 복음의 요한은 말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세상을 더욱 매섭도록 진지하고 날카롭게 보십시오. 병든 세상을 살려내야 하는 것은 주님의 메시지를 통한 우리 실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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