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간 화요일
사람이 살면서 늘 부딪히는 문제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살피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늘 비교의 기준을 예전의 방식, 예전 누가 했던 것. 예전 벌어진 판결을 검색하며 찾게 됩니다. 그러나 항상 그 방법이 옳지는 않지요. 상황은 예전과 달리 계속 변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오늘 새로운 사람을 찾습니다. 사울은 더 이상 희망이 되질 못했습니다. 주님의 명에 따라 ‘이사이의 아들’을 찾던 중, 눈이 번뜩일만한 엘리압을 보자 주님의 명이 내립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된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주님은 마음을 본다” 사울왕은 성경에 나온대로 외모가 근사했다고 하지요. 결국 자리에 없던 막내 다윗까지 찾으며 그를 차기 임금에 자리에 간택합니다. 복음도 바리사이들이 말립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합니까?” 그러자 주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대다수가 예전 해왔던 전례를 따르다가 현실을 못보곤 합니다. 하느님의 사업은 변치않는 큰 틀 안에서 작은 디테일은 계속 변화되었다는 점을 아십니까? 지금의 미사 방식이 2천년 전과 똑같지 않았지요. 성경번역도 이전과 달라집니다. 현 세대와 동떨어지면 안되니까요. 다른 것은 다 변해도 된다면서 교회만 여전히 고리타분해야 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지요.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규제로 막아서면 안되겠지요. 주님의 구원 사업은 늘 현재 진행형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새로운가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