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주일
예전엔 어떤 곳을 가기 위해 나침반을 이용했습니다. 동서남북 방향을 알아야 길을 거꾸로 가지 않으니까요. 요새는 네비게이션이나 지도앱을 쓰지요. 갈 장소를 찍으면 도보, 교통편으로 얼마나 걸릴지 택시비가 얼마인지까지 나오는 편리한 세상이 왔지요. 그래서 이젠 지방에 갔다고, 외국에 갔다고, 미사에 참례하지 못했다는 말은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이 되는 세상입니다. 너무 잘 알려주니까요. 참 편한 세상이 왔지만 정작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힘들어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모르니까요. 계획한다고, 노력한다고 그대로 되진 않으니까요. 여기엔 이런 게 들어있지요. ‘나는 잘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실패하곤 싶지 않다. 그런데 지금 난 헤매고 있다’ 가 지금의 상황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늘 불확실한 미래를 삽니다. 이럴 때 어떡해야 할까요?
국어사전을 보면 ‘사명(使命)’ 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맡겨진 임무라는 뜻이죠. 그럼 여러분은 ‘무엇 하는 사람’입니까? 나이가 이렇게 되고보니 직장, 사업, 선호도가 계속 바뀌는 현실에서 콕 집어서,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나 자신과 상대방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이런 말이 있지요. ‘하고 싶어하는 것만 하려는 사람은, 결국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한다’ 고요. 왜 그럴까요? 에너지는 있으나 방향이 없으면 그리 되는데요. 여러분의 삶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위해 길을 떠나십니다. 하지만 당신이 원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1독서 이사야 예언서에 “즈불론 땅과 납탈리 땅이 천대를 받았으나 바다로 가는 길” 이란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바다는 영어로 Sea가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은 큰 호수도 바다로 말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갈릴래아 호수를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시작을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고 나옵니다. 구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죠. 본인이 좋아서가 아니라요. 공무원을 해보신 분들이나 회사 사정으로 임지 이동이 잦으신 분은 아십니다. 원치 않는 곳에서 시작한다는 게 참 어렵다는 것을요. 새롭게 적응도 해야 하고요. 동네 분위기가 안 맞아도 견뎌야 합니다. 사명을 받은 이가 겪어야 하는 사명감이지요. 사명감을 다른 말로 책임감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3초 정도의 첫인상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인스탄트 시대에서, 순간의 선택으로 나의 인생을 결정짓는 지금에서, 이런 사명감은 여러분에게 굉장히 힘들 수 있습니다. 구차하게 보이겠고요. 옛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구차함과 구닥다리 같은 사명을 지킨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을 만날 수 있었다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만약 누군가 했던 말을 바꾸거나, 자기 상황이 달라졌다고 그때 그때마다 말없이 바꿔댔다면 오히려 혼란하겠지요. 참다운 보수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약속을 했다면 반드시 지킵니다. 그리고 어떤 역경이 와도 반드시 이뤄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신뢰를 가지게 되고요. 그런 브랜드의 가치는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게 됩니다. 만약 예수님의 삶이 말 바꾸기의 연속이요, 상황에 따라 처신을 계속 달리했다면 이분을 신앙의 경지까지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 이후 성령을 통해 교회가 생겼고,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정리한 절대적인 교리가, 만약 시대에 따라 달리 전해지고 해석된다면, 여러분이 이 가르침을 따르겠습니까? 아니지요. 무릇 성실함은 좀 늦어 보입니다. 둔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성실함이란 가치를 얻게 되지요. 그리고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켜내려 그렇게 하셨고요. 우리도 그런 예수님을 좋아하고 존경할 수 밖에 없는데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참으로 성실하십니까? 성실하시다면 예수님처럼 계속 꾸준히 다져 가시길 바라겠고요. 성실치 못하다면 더욱 주님을 닮도록 하셔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하느님을 통한 예언자의 말을 실현하려 그렇게 하셨습니다. 무엇이든 믿기 힘들고 속이는 세상에서 우리라도 성실하고 신뢰감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서로가 그리할 때 당연함을 통해 행복한 세상이 되어갈 것입니다.
